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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와 대화되는 할아버지, 그게 평생학습 아닐까요?”

조정래 작가와의 신년 특집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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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다들> 발행인의 여는 말

2018년, <다들>이 만난 첫 번 째 멘토를 고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새 해, 새 희망을 이야기하되, 개인과 사회, 민족 공동체 전체의 미래를 아우르는 웅혼한 메시지가 곁들여졌으면 좋겠다는 판단이 섰을 때, 이미 결론은 난 셈이었다. <태백산맥>과 <아리랑>, <한강> 등 남들은 한평생 한 편 쓰기도 힘들다는 대하소설을 시리즈로 엮어낸 조정래 작가로 시선이 모아졌고, 곧바로 핸드폰이 없는 조 작가의 집으로 전화를 넣었다. 평생학습의 일꾼들을 위해 무술년의 희망 메시지를 들려달라는 주문을 거절할 조 작가가 아니었다. “분당 우리집으로 오소!”라고 인터뷰 요청을 흔쾌히 수락한 이 ‘대한민국 국민 작가’는 예상대로 개인과 사회 공동체를 넘나들며 평생학습이야말로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불씨일 수 있음을 때론 열정적으로, 때론 남도식 입담을 섞어 해학적으로 풀어냈다.

조정래는 누구인가?

1943년 전라남도 순천 선암사에서 시조 시인이자 대처승인 아버지 조종현(趙宗玄)과 어머니 박성순의 4남 4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주로 순천과 벌교에서 지내면서 여순사건과 6·25전쟁을 겪었다. 이 유년의 경험은 훗날 조정래 문학의 자양분으로 작용했다.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고, 시인 김초혜(金初惠)와 결혼했다.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 그 그늘의 자리>, 중편 <유형의 땅>, 장편 <대장경>, <불놀이> <인간 연습>, <사람의 탈>,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는 <누구나 홀로 선 나무>,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자전 에세이 <황홀한 글감옥> 등을 출간했다.

원고지 1만6천5백장 분량으로 6년간 연재된 <태백산맥>은 해방공간에서 좌익운동의 실상을 객관적으로 파헤치며 우리 민족 내부에 도사리고 있는 모순을 비판적 시각으로 다뤘다는 평가를 받는다. <태백산맥>은 완간되자마자 문학 담당 기자들과 문학평론가들에 의해 ‘1980년대 최고의 작품’, ‘1980년대 최대의 문제작’으로 꼽혔다. 이후 2만장 분량의 원고로 일제 식민지배 체제에서 폭압에 맞선 우리 민족의 저항과 투쟁, 승리의 역사를 담은 <아리랑>을 출간했고, 4.19, 5.16, 10월 유신과 부마항쟁,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현대사가 담긴 <한강>을 출간해 현대사 3부작을 완성한 뒤 ‘20년 글감옥’ 에서 출옥했다.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성옥문학상, 동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동리문학상, 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

1월 9일 오후, 분당 궁안마을 조정래 작가의 자택으로 가는 태봉산 자락의 좁은 길로 접어들자 하얀 눈발이 탐스럽게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영하의 날씨 속에서 밥그릇을 엎어놓은 듯한 반구형의 태봉산은 서설(瑞雪)인 듯 새하얀 눈으로 하얗게 뒤덮여 가고 있었다.
조정래 작가는 백의(白衣)의 염결함이 배어 나오는 흰색 무명옷을 곱게 차려 입은 채 <다들> 취재팀을 반갑게 맞았다. 고된 여정의 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면서도 피로한 기색 없이 특유의 유머를 곁들인 활기찬 답변으로 인터뷰를 이어갔다. 한겨레신문사가 기획한 ‘휴심여행’에 42명의 독자들과 함께 ‘조정래와 함께 하는 부처의 길’을 주제로 북인도 3200km를 순례했는데, 여행 첫날 감기에 걸려 기침약을 달고 강행군을 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삶과 인생을 되돌아볼 좋은 구경도 많이 하고 8년 뒤 출간할 마지막 장편이 될 소설의 소재도 발굴해서 돌아왔다고 한다.

▲인터뷰 중 환히 웃고 있는 조정래 작가. 뒤편으로 태봉산 자락이 보인다.

마침 눈도 오고 정취가 참 좋습니다. 여기 아주 좋은데요.

여기도 좋지만 곧 떠납니다.

예? 어디로요?

요즘 제가 새로 작명한 저의 호가 ‘오월명촌’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요즘 줄여 말하는 게 인기잖습니까? ‘인포인=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 ‘신포신=신문이기를 포기한 신문’. 마찬가지로 ‘오대산 월정사 자연명상마을 촌장’의 준말이 ‘오월명촌’입니다.
평창동계올림픽 때 오대산 월정사 근처에 자연명상마을이 오픈합니다. 300명 정도가 숙식할 수 있는 곳인데, 제가 거기 촌장으로 가서 IOC 위원들을 상대로 한민족의 특질, 전통에 대한 특강을 하고, 오대산 월정사 주지 스님과 함께 월정사 천년의 숲을 따라 성화 봉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화 봉송 한다니까 손자들이 제일 좋아해요. 하하.

사모님도 함께 가시는 건가요?

당연하지요. 거기 가서 사는 겁니다. 스님들과 함께 밤 9시에 자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절밥을 먹고, 오전 10시까지 집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촌장으로서 제가 할 일은 명상마을 오시는 분들 입학식과 졸업식 때 한마디 하는 겁니다. 물론 평소에도 마을 사람들과 삶, 문학,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구요. 멀다고 하지만 청량리부터 KTX로 40분이면 진부역에 도착하고, 진부역에서 택시 타고 5분만 들어가면 됩니다. 마을은 거의 완공됐는데, 촌장집이 아직 덜 지어져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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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소설의 주제는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

인도에는 무슨 작품을 구상하려고 가셨습니까?

8년 뒤 발표할 저의 마지막 장편소설을 준비하러 갔습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죽음의 공포’와 ‘내세’까지 응답하는 영혼의 문제에 대해 쓸 작정입니다. 더 나이 들면 여행가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번에 다녀왔지요.
지금은 잠깐 쉬는 중인데, 올 7월부터 또 소설을 시작합니다. 11개월 쓰고 내년 6월에는 책이 나올 거예요. 제목이 <천년의 질문>이라고, ‘국민에게 국가란 무엇인가’를 묻는 작품입니다. 교육공무원 기획국장이 국민들에게 “개, 돼지”라고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 아닙니까? 도대체 국가란 조직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국민을 억압하고 횡포를 부려왔는가? 합법적 마피아 집단이면서 폭력 집단인 국가에 대해 이야기할 예정입니다.
또 대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불확실한가에 대한 질문도 할 겁니다. 사랑의 맹세만큼 허황한 게 없잖아요? 대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입니다. 표를 줘도 끝없이 국민을 배신합니다. 그것이 권력의 속성입니다. 권력을 잡는 순간 ‘악마’가 되고, 권력을 놓는 순간 ‘허수아비’가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 아닙니까? 끝없는 촛불시위로 권력을 감시해야 합니다. 끝없이 감시하지 않으면, 끝없이 촛불시위 하지 않으면, 끝없이 ‘개, 돼지’ 취급을 받고, 짓밟히고 착취당할 겁니다. 아마 소설 속에 ‘개, 돼지’라는 말이 10번 이상 나올 겁니다. 하하.
전체적으로는 우리나라를 토대로 해서 쓰되, 전 세계적인 응답이 될 수 있도록 상사원, 외교관 등의 등장 인물들 입을 통해 이야기할 예정이구요.

‘개, 돼지’ 발언에 큰 충격을 받으셨군요.(웃음) 그 사람도 교육공무원이었습니다만, 선생님이 교육문제에도 관심이 깊은 줄은 잘 몰랐습니다. 재작년에 나온 <풀꽃도 꽃이다>에서는 지금 우리 교육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과 질타를 쏟아내셨지요?

하하. 사실 그 소설은 학부모들이 제일 좋아할 줄 알고 썼는데, 학부모들이 제일 싫어합디다. 문제가 학부모에게 있다고 썼으니까. 현실이 이렇게 악랄한데 내가 너무 순진했구나 하는 걸 깨달았지요. 대한민국 독서계는 20~30대 여성 독자를 잡지 못하면 실패하는 건데, 내가 그 분들한테 졌어요.

▲ 10여 년 전 조 작가로부터 직접 사인을 받은 <황홀한 글감옥>


평생교육의 마지막 목표는 ‘죽음을 극복하는 자아 만들기’

4차 산업혁명이다, 100세 시대다, 인생 3모작이다 해서 ‘평생교육’이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평생교육’하면 어떤 게 떠오르십니까?

평생교육이라 하면 끝없는 자기계발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그게 지금 손자 세대가 부딪히는 문제지요. 저는 스스로를 끝없이 단련하며 손자 세대와도 대화를 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가 아니라 “니들은 그러니?”하면서 손자 세대와 의식의 화합을 이룰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는 것이지요. 손자들이 “할아버지는 구식이야!”하는 순간 버림받게 됩니다. 애들을 감동시킬 만큼 스스로 노력해야 된다고 봐요. 시간이 없어 글을 못 읽어, 시력이 나빠 글을 못 읽어, 하는 건 무식과 야만을 자처하는 일입니다. 요즘 좋은 안경이 얼마나 많습니까? 시간을 왜 내지 않습니까? 그러면 모두에게 버림받게 됩니다.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려면 밑의 밑 세대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83세까지만 장편을 쓸 겁니다. 그 뒤에는 중단편이나 명상의 글을 쓰면서 늙어가고 싶어요. 원래 화가가 되고 싶었는데 물감 값이 없어 단념하고 글쓰기를 택했습니다. 그래서 제 취재수첩에는 그림이 많습니다. 83세부턴 그 꿈을 이어 붓글씨를 쓸 생각입니다. 10년쯤 아침저녁으로 쓰다보면 서예전까지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좋은 글귀를 한 300개쯤 써 붙여놓고 선착순으로 독자들에게 선물할 겁니다. 그런 계획을 세우니까 새해가 기다려져요. 길을 닦아 자신을 연마하는 것, 이게 다 평생교육이잖아요?

‘인생은 길 없는 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엄경>에 나오는 말이지요. 저는 이런 말을 즐겨 합니다. “인생이란 자기 스스로를 말로 삼아 끝없이 채찍질을 가하며 달려가는 노정이다” “인생은 두 개의 돌덩이를 바꿔 놓아 가며 건너는 징검다리다. 외롭고 고달프지 않은 삶이란 없다.” 그래서 도를 닦고,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덜 외롭고, 덜 고달프기 위해 도를 닦고 마음을 닦는 셈인데, 저는 이것이 평생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고달픔과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드는 힘, 그것이 평생교육이지요.

제가 농촌 출신이다 보니 땅에 대한 애정이 많습니다. 환경, 생태에도 관심이 많고, 나이 들다 보니 죽음과 영생, 종교에도 관심이 미칩니다. 평생교육의 마지막은 결국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자아를 만드는 일 아닙니까? 죽음은 또 다른 형태의 삶이에요. 영원한 잠이잖아요? 이렇게 두려움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해요. 끝없는 훈련을 통해서 말입니다.

역시 대작가답다. 마치 준비된 발언인 듯, 한 마디 한 마디가 말 그대로 주옥같다. 많은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면서 생각의 깊이와 넓이를 키워왔기 때문일 것이다.

집필할 때 시간을 정해놓고 일하신다구요?

중단편을 쓸 때는 시간의 낯가림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대하소설을 쓸 때는 그게 안돼요. 전력투구를 해야 합니다. 제가 마흔부터 예순까지 20년간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 32권을 썼습니다. 먹고 자는 시간 빼놓고는 거의 다 소설 쓰는 데 바쳤어요. 세 편의 대하소설은 그렇게 나왔습니다. 세계적으로 저처럼 한 작가가 대하소설을 세 편이나 쓴 예는 없다고 합니다. 미하일 쇼로호프도 <고요한 돈강> 하나, 박경리 선생도 <토지> 하나인데, 저만 세편이더라고요. 하하.

소설을 쓰기 위해 채식과 소식을 하고, 육식은 일주일에 한번만 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국민보건 체조를 하고 산책을 하면서 체력을 다졌지요. 이번 인도여행 가서도 체조를 했더니 사람들이 다 따라합디다. 하루도 빼먹지 않고 하는 게 중요해요.
<태백산맥>을 끝낼 즈음, 이른바 ‘운동권의 시대’도 함께 끝났는데, 그때 출판사 사장이 저더러 골프를 치자고 해요. 저는 소설 쓰느라 20년간 술도 안 마셨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골프라니요! 대개 하루에 30매를 쓰는데, 술 마시면 당일, 깨는 데 하루, 회복하는 데 하루, 이렇게 사흘이 그냥 날아가 버려요. 술 10번만 마시면 900매가 날아간단 소리지요. 술도 끊고, 세상과의 인연도 끊고, 그래서 아직 휴대폰도 없습니다. 컴퓨터가 아니라 여전히 육필로 원고를 쓰고요. 그렇게 후회 없이 노력하면서 소설을 썼 왔던 것이지요.



신춘문예 거듭 낙방…낙방은 ‘실패’ 아닌 ‘단련’

흔히 예술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문학도 예외는 아닐 텐데요. 누구보다 많은 글을 써오셨는데, 뛰어난 재능을 가지신 건가요, 아니면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건가요?

우리가 자주 듣는 말에 ‘타고 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질이나 재주를 가리키는 말이겠지요.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답을 피할 수 없게 됐으니 말하지요. 예술은 일단 타고난 재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재능은 예술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모든 직종의 일이 재능을 필요로 합니다. 이 말을 다시 바꾸면 이렇습니다.
“천재란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이건 에디슨이 한 말이지요. 여기서 영감이란 재능이나 소질을 말합니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과학계의 2대 천재로 불리는 에디슨의 이 말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천재란 재능이 아니라 노력이 결정짓는다는 것 아닙니까? 에디슨의 말은 흔히 말하는 ‘천재의 겸손’이 아닙니다. 그가 그 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낼 때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수백 번, 수천 번의 노력을 다 바친 다음에 얻은 진정한 고백일 것입니다.

세계가 인정하는 천재 첼리스트 카잘스를 한번 볼까요. 천재 첼리스트에게 붙여진 별명은 그에 어울리지 않게 ‘연습벌레’였습니다. 카잘스는 평생에 걸쳐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날마다 세 시간씩 따로 연습을 했어요. ‘따로’란 교향악단이 합동연습을 하는 날에도 혼자 또 연습을 했다는 뜻이죠. 그 지독한 끈질김은 여든을 넘기고, 아흔을 넘어서도 계속됐습니다.
“선생님은 전 세계가 인정하는 최정상입니다. 그리고 연세까지 아흔을 넘기셨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도 매일 세 시간씩 연습을 하시는 겁니까?” 어느 기자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날마다 조금씩 나아지는 것 같아서…….” 카잘스의 대답이었습니다. 무슨 말을 더하겠습니까. ‘징그럽고 끔찍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그런 노력을 바치지 않고, 하는 일이 잘 안 된다고 푸념하고 불평하고 재능 탓만 해야 되겠습니까?
문학청년 시절에 저도 초조한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또 쓰고, 신춘문예에 자꾸 낙방하고, 문예지 추천도 안 되고 하면서 저의 재능에 끝없이 회의했습니다. 그 회의가 없다면 사람일 수 없고, 발전도 있을 수 없겠지요. 그리고 그런 낙방들은 실패가 아니고 수련이고 단련입니다.



크게 되려면 오래 노력해야…‘재능’보다 ‘노력’ 더 믿어

흔히 얘기하는 교훈 중에 ‘대기만성’(大器晩成)이라는 말이 있지요? 국어사전에는 “큰 그릇을 만드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뜻으로, 크게 될 사람은 늦게 이루어진다는 말“이라고 풀이합니다. 이 뜻풀이는 글자의 의미에 충실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만성’(晩成)은 오래 걸린다는 뜻만이 아니라 ‘오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이지요. ‘크게 되려면 오래 노력해야 한다’, 저는 저의 재능보다 노력을 더 믿었습니다.

조정래 작가의 문학관은 두 군데 있다. 전남 벌교의 ‘태백산맥 문학관’과 전북 김제의 ‘아리랑 문학관’이다. 한 작가의 각기 다른 작품으로 문학관이 세워진 것 또한 우리나라에선 유례가 없는 일이다. 최근에는 전남 고흥에 ‘가족문학관’도 개관했다. 조정래 작가, 아내 김초혜 시인, 아버지 조종현 시조 시인의 작품을 모은 문학관이다. 한 작가를 기념하는 세 개의 문학관이 세워진 것이다.
벌교는 조정래 작가의 의식 속에서 전쟁 공포로부터 자신을 지켜준 편안하고 따뜻한 곳이다. 비록 3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그의 육신과 문학의 고향이 벌교다. 여순사건으로 온 가족이 몰살당할 뻔한 기억을 등지고 자리 잡았던 곳이고, 이 기억 덕분에 우리는 <태백산맥>이라는 걸출한 작품을 볼 수 있었다.



‘헬조선’은 모두의 책임, 그러나 희망 잃지 않아야

촛불집회로 대통령이 바뀌었습니다. 대작가에게 현실 정치 문제를 여쭈어도 될까요?

지지난 대선 때, 자기 친구가 박근혜 캠프의 홍보 책임자로 있다는 문화평론가가 저한테 한 말씀만 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어요. “그 사람은 얼굴은 어머니고, 마음은 아버지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도 소용이 없어”하며 사양했습니다. 그런데 자꾸만 부탁하기에 어쩔 수 없이 두 가지를 말해줬습니다. “첫째, 경제를 살린다고 말하지 마라. 박정희 시대가 아니고 국민소득 2만5천불 시대니까 경제는 자기 맘대로 굴러간다, 대통령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신 통일 문제를 풀어가라.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닦아놓은 길을 따라가 물꼬가 트이면 통일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 둘째, 아버지를 능가하려면 그 반대로 하면 성공한다. 아버지가 유신독재를 했으니까 국민들에게 100% 시위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라.”
그런데 정반대로 해버렸잖아요? 개성공단 폐쇄하고 사람들 잡아넣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치인들한테 이제 한 말씀 안 합니다. 두어 사람 해줬는데 안 듣더라구요. 허허.

젊은이들이 많이 어려워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한 말씀 해주시지요.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해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 세상 모든 일에 대해 각자가 하고 싶은 마음은 절로 동해야 합니다. 배고플 때 밥을 먹고 싶은 마음과 같은 것이지요. 그렇게 마음이 동하는 일이 있으면 망설임 없이 그 일을 직업으로 삼으세요. 그러면 실패가 없고, 후회가 없고, 생애가 행복합니다. 단, 사람에 따라서 그 발견의 시기가 다를 뿐, 누구나 한 가지 일에는 마음 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2만5천 가지가 넘는 직종이 있고, 하늘은 사람마다 그중 한 가지씩은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어 이 세상에 점지해 주셨습니다. 그 능력을 재능이라 해도 좋습니다. 그 발견은 부모가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하는 것입니다.
몇 번씩 되짚어보고, 점검해 보아도 그 발견이 틀림없다고 확인되면 과감하게 그 길로 가야 합니다. 부모의 우격다짐이나 고집에 밀려 인생길을 시작하면 십중팔구 후회하고 회한을 갖게 됩니다. 부모가 자식의 인생에 마구잡이로 개입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과 탐욕 때문입니다. 내 자식만은 남들보다 잘되어야 한다는 욕심과 잘되게 만들고 말겠다는 탐욕, 그게 결국 자식을 망치는 첩경이지요. 오늘날 나라를 망조 들게 하는 사교육 열풍과 영어 교육 광풍도 그 욕심과 탐욕의 결과 아닌가요?
인생의 선택을 앞둔 젊은이 여러분, 부모의 지나친 개입을 단호히 거부하십시오. 여러분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며, 노예는 더구나 아닙니다. 여러분은 여러분만의 개성과 능력을 가진 인격체며 독립체입니다. 그렇다고 건설적인 상의나 이성적인 충고, 사려 깊은 조언까지 묵살하라는 건 결코 아닙니다. 부모는 나를 제외하고 나를 가장 사랑해주는 존재며, 앞서 인생살이를 경험한 더 없이 좋은 교사이기도 합니다. 인생길의 선택 앞에서 현명하게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한 말씀 더 드리면, 요즘 젊은이들이 말하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저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전적으로 기성세대 책임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기성세대는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오늘을 만들어내느라고 40년 동안 하루 12~14시간씩 일하고 자신을 희생시켜온 세대입니다. <한강>이 그 이야기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국가도, 국민도, 놓친 것이 많습니다. 윤리, 도덕, 가치관, 인성, 배려의 문제 등등. 그런 가운데 경제성장이 둔화되니까 일자리가 줄어들었고, 살만 하니까 3D 노동은 외국인들한테 맡긴 지 30년이 되어가잖아요? 그러니까 이게 모두의 책임이지 기성세대만의 책임은 아니에요. 남에게 잘못을 떠넘기는 건 하질의 인간이 하는 짓이에요. 지금 매우 어렵겠지만 당장의 어려움이 인생을 결정하는 건 아니잖아요?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세요. 절망이 절망을 낳지 않도록. 인생은 희망이니까요.



평창올림픽, 남북 긴장 완화에 큰 기여할 것

15년 전, 인터뷰어는 리영희 교수, 조정래 작가 등과 함께 전세기편으로 북한을 방문해 백두산 천지에 오른 적이 있다. 6월 중순쯤이었는데, 우리 일행은 3대를 통해 공덕을 쌓아야 볼 수 있다는 백두산 천지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 속에서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명징하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는 그 당시 얘기를 꺼내자 “천지에서 버스를 타고 개마고원으로 하산할 때 온갖 들꽃이 만발한 개마고원 능선에서 자리를 깔고 점심을 먹던 기억이 새롭다”며 상세한 기억을 털어놓았다.
그런 그에게 북핵 문제로 다시 긴장이 높아졌다가 평창올림픽 단일팀 구성 등으로 대화국면에 들어간 남북 관계와 통일 문제에 대해 물었다.

조정래 작가는 남북 긴장 완화에 평창올림픽이 상당히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88서울올림픽이 전두환의 정권 연장 기도에서 유치 작업이 시작됐지만 결과적으로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리는 중요한 계기가 된 것처럼 평창올림픽도 남북한 관계의 물꼬를 트는 데서 나아가 다시 한 번 대한민국의 저력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했다. 또 그렇게 쓰는 돈은 낭비가 아니라 통일비용이라고 덧붙였다. 평화통일로 가는 계단을 놓는 셈이라는 것이다. 15년 전보다 오히려 더 젊어진 조정래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정리/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김영철 원장, 김계환 전문 위원
<다들> 이유정 기자
▲ 인터뷰 기념 촬영. 왼쪽부터 조한준 주임, 김계환 위원, 조정래 작가, 김영철 원장, 전아림 주임, 이유정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