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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 ‘시즌2’의 새 돌파구 필요”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

<다들, 배움>에서는 우리 사회의 스승이자 시대의 사표와 함께 배움과 학습의 참된 뜻을 헤아려 봅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며, 웹진 <다들>의 발행인인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김영철 원장이 인터뷰 진행자(인터뷰어)로 나섭니다.

<다들, 배움>과 함께 해주신 분들
창간호고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
2호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
3호박원순 서울시장
4호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5호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6호박재동 한예종 교수
7호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
8호김제동 방송인
9호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10호이형우 마이다스아이티 대표
11호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12호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16호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장
17호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18호최열 환경재단 대표
19호김용택 시인
20호서재경 남도학숙 원장‧아름다운 서당 이사장
21호나효우 착한여행 대표

김동춘은 누구인가?

80년대 후반~90년대 초반, 1987년 민주화운동의 성과를 딛고 진보적 학술운동이 학문의 거의 모든 영역에 몰아쳤다. 학술운동의 중심이었던 사회과학은 물론이고 철학과 국사학 등 인문학과 난공불락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법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학문의 거의 전 영역에서 진보적 흐름이 본격화됐다. 학문의 각 영역별로 앞다투어 민간 연구소가 생겨났고, 진보적 학술지들이 학술과 담론 시장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당시 학술운동의 앞자리에 김동춘 교수가 있었다. 그는 77학번으로 서울대 사범대 지리교육과를 졸업한 뒤 사회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거치며 한창 진보적 사회과학 방법론에 몰입해 있었다. 당시 그가 가장 진보적이던 학술지인 <역사비평>과 <경제와 사회> 편집위원으로 활동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진보적 학술운동의 전위에서 활동하던 그가 당연히 가장 진보적인 교수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성공회대 사회과학부에 조교수로 둥지를 튼 것은 진보적 학술운동이 거의 최정점을 찍었던 1997년. 교수로 재직하면서 같은 학교 인권평화센터 소장으로 일하던 그는 역시 당연한 귀결로 2000년 당시 가장 열정적인 시민운동가인 박원순 변호사가 조직한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으로 시민사회의 진보적 정책통으로 역할하기 시작했다.
참여정부 때인 2005년에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안병욱 위원장과 함께 상임위원을 맡아 우리의 아픈 과거사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 및 정리 작업에 참여했다. 현재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다른 백년’이라는 민간 싱크탱크의 비상임 연구원장을 맡고 있다.

진보 학술운동의 전위, 지금은 ‘다른 100년’을 꿈꾸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 인터뷰어가 <한겨레신문> 문화부 학술 담당 기자로 한창 진보적 학술운동을 취재할 때 김 교수는 몇 되지 않는 중요한 취재원이었다. 당시 학술 기자들의 중요 취재원이었던 그는 말과 글의 논리성과 정확성으로 매우 돋보였고 그가 말하는 내용은 그대로 기사로 옮겨도 문제가 없었다. 수십 년 만에 인터뷰 자리에서 다시 만난 그는 예의 그 논리성과 정확성으로 돋보였고 말은 그대로 기사였다.


오는 9월 21일에 열리는 제2회 서울 평생학습 대토론회에서 노동 분야 민주주의 토론방의 좌장을 맡아 주시기로 했는데요. 그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우선 민간 영역의 싱크 탱크라는 ‘다른 백년’에 대해 소개해 주시지요. 이름이 눈에 확 들어옵니다.

‘다른 백년’은 김근태 전 의장 외곽조직인 한반도재단과 일촌공동체의 설립자이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후원자로 좋은 일을 많이 하신 이래경 선배님과 함께 만든 싱크 탱크입니다. 서울대 공대 학생운동 출신인 이 선배는 ‘호이트 한국’이라는 독일계 기업의 한국 지사장을 오래 하신 기업인으로 대표적인 김근태 맨이지요. 3년 전쯤 민간이 운영하는 싱크 탱크를 만들고 싶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마침 저도 대학이 커버하지 못하는 부분을 감당하는 민간 싱크 탱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참이라 선뜻 힘을 보태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에 있으면서도 민간에서 정책적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내는 집단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우리나라는 정당 연구소도 싱크 탱크 기능이 거의 없어요. 민주당이 운영하는 민주연구원이나 자유한국당 부설로 되어 있는 여의도연구소가 있지만 제대로 된 싱크 탱크 기능을 한다기보다는 선거를 분석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기업 쪽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보듯이 자사 이해관계 위주로 활동하고 있구요. 그래서 NGO적 싱크 탱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제안을 받게 된 겁니다.

다음 세대의 한국이 어떠해야 된다는 것을 밝히는 <한국 보고서>를 첫 작품으로 준비한다고 들었습니다.

싱크 탱크 아이디어가 처음 나온 지난 2014년이 마침 갑오 ‘동학 120년’이 되는 해여서 ‘가보세 플랜B’를 주제로 첫 세미나를 하다가 결합하게 됐지요. 저는 연구자들을 끌어들이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2016년 6월에 사단법인이 됐고, 지금은 이사진 외에 김상중(경희대), 최배근(건국대) 교수 등 30여명의 연구자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다른 백년’의 비전은 한마디로 하면 “우리 사회의 제대로 된 방향 설정을 통해 미래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자”는 것입니다. 비슷한 민간 싱크 탱크로 ‘여시재’가 있는데, 저희가 경제적 여력은 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하지만 학계 사람들을 많이 포괄하고 있어 강점이 있습니다. 출범 후 1년 동안 말씀하신 <한국 보고서>를 내자고 해서 열심히 작업했고, 이번 9월에 드디어 나옵니다. ‘다른 백년’의 첫 결실이지요.



대의 민주주의 위기는 전 세계적인 상황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집회를 염두에 둔 듯 직접 민주주의에 대해 발언을 하자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이라며 논란이 일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하나요?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대의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미국 버지니아 살러츠빌의 백인우월주의자들의 테러, 바르셀로나 테러, 프랑스 테러, 영국의 브렉시트 등 현재 세계적으로 극우세력이 창궐하고 있지요. 인종주의나 신나치, 민족주의가 창궐하는 건 대의 민주주의, 즉 정당 민주주의의 위기에서 오는 겁니다. 정당이 사회적인 약자들을 대변하지 못할 때 사람들은 좌측이 아니라 우측으로 가는 경향이 있어요. 버지니아 사태에서 백인우월주의자들이 들고 나온 구호가 “우리는 루저 중의 루저다”입니다. 그들이 백인인데도 그런 구호를 들고 나오지요. 우리나라 ‘일베’하고 비슷합니다.
대의 민주주의의 위기는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입니다. 한국은 그게 가장 긍정적으로 표출되었고, 그게 바로 촛불집회이지요. 박근혜 정부가 최순실이나 재벌 등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해 농단 당한 것을 국민들이 목격했고, 거기에 대한 위기의식과 분노가 촛불로 표현된 건데 이건 아주 건강한 표출이라고 봐야지요.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민’(民)이 직접적으로 정치에 참여하고, 정당이 제 기능을 하라는 강력한 메시지 아닐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집단지성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개혁 드라이브는 정권만으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고백한 거라고 봅니다. 정권과 시민사회, 이 두 축을 가지고 앞으로 끌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닌가 싶어요. 지금 80%의 지지율로도 지탱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걸 어떻게 제도화할 거냐 하는 문제는 9월 이후 국회에서의 입법을 통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년 지자체 선거 이후에 정치적인 동력을 가지고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정한 주민 자치는 지역 토호세력 실태 조사부터 시작해야


서울평생교육진흥원이 9월에 주관하는 제2회 평생학습 토론회의 주제가 ‘광장 민주주의-담장을 넘어 일상으로’입니다. 그만큼 광장 민주주의의 열기나 염원이 일상에 뿌리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는 건데요. 김 교수님이 보기에 2017년, 지금의 한국 민주주의 수준은 어떻습니까?

세계적인 대의 민주주의 위기 속에서 그래도 한국은 체면을 살렸어요, 촛불시위 덕분에.(웃음) 하지만 저 밑으로 내려가 냉정하게 들여다보면 한국 민주주의의 토대는 아주 허약합니다. 정부와 엘리트들이 상층부에서 드라이브를 걸고 있지만 지역사회나 마을은 70년 보수체제가 여전히 강고하게 버티고 있으니까요. 국가주의적인 전통이 오래된 한국만의 전형적인 특징이기도 합니다. 일본만 하더라도 풀뿌리 민주주의는 강해도 상층은 전혀 안 바뀌고 있거든요. 한국과 정반대지요. 한국은 그러니까 굉장히 특수한 경우에 속합니다.
또 한국은 정당 체계가 아직 자리를 못 잡고 있습니다. 유럽은 그래도 정당이 대변을 하잖아요? 정당이 기능을 하니까 사람들이 정당을 통해 자기들의 지지를 표출하구요. 정당이 사회교육 기능도 어느 정도 가지고 있고 정책역량을 가진 국가의 지도자들도 키워내고 있습니다. 한국은 시민사회가 푸쉬를 하다가 푸쉬가 안 되면 폭발하고, 그러면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이명박근혜 10년’, 시민사회 거의 무너져

하지만 그런 시민사회도 지난 10년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면서 크게 위축된 게 사실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자생력이 없는 시민단체들은 그 기간 동안 거의 무너졌지요. 이명박 대통령의 “촛불을 누구 돈으로 샀느냐”라는 공격에서 시작해서 시민사회를 엄청 압박했거든요. 거기다 진보 지자체장이 당선되면서 그 지자체나 중간 지원조직에 그나마 남아 있던 시민사회 인재들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하지 않은 인력 풀이 완전히 고갈된 겁니다.
최근 청와대 하승창 사회혁신 수석이 “주민센터를 공공서비스 플랫폼으로 바꾸겠다”고 발표했잖아요? 뜻은 좋지만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접근해야 합니다. 지역 실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얘기이지요. 추진 동력이 얼마나 되는지 전체적인 상황 파악이 선행되어야 하고, 각 지역에 관변단체가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설 수 있는 전략도 세워야 합니다. 사회적 경제를 하는 단위들을 활성화시켜서 뭔가를 하는 방안도 있어야 하구요. 수도권은 그나마 나은데 지방에 가면 노인층 밖에 없고 50대 이하의 청년층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30~40년 동안 토호세력이 독재를 한 지역이 숱합니다. 그런 데서는 중앙 정부에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예산을 주면 토착세력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하고 말아요. 수도권, 대도시, 공장지대, 농촌 등 각 케이스 별로 그 지역 사정에 맞게 지역 정치를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겁니다.

지난 총선과 대통령 탄핵 등을 거치면서 양당 구도가 깨졌습니다. 현재의 다당제를 어떻게 보십니까?

아주 좋은 상태라고 봅니다. 양당구도로 가면 안 됩니다. 양당제로 가면 여권이 가까스로 이길 수는 있으되 개혁조치는 못 취합니다. 지금의 다당제 구도로 가되 서로 타협을 통해 주고받으면서 개혁으로 가는 게 바람직합니다.
조금 더 바란다면, 자유한국당이 지지율만큼의 의석만 가지는 것, 정의당이 지금보다 더 커지는 것, 진보 정당이 몇 개 더 나오는 것, 이런 것들입니다. 국민의당도 살아남는 게 좋습니다. 바른정당하고 합쳐도 되구요. 이렇게 되면 건강한 한국 정당판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한국, 자신이 노동자인지 모르는 노동자들의 나라

한국에서 노동의 개념, 노동자의 개념, 노동자의 이미지는 여러 가지 논란이 많습니다. 어떻게 봐야 됩니까?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반노동적인 국가입니다. 노조 조직률이 최하위입니다. 노조 활동이 여전히 빨갱이로 취급되는 나라이기 때문에 노동 3권이 아직 제대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나라이지요. 노동자의 권리도 최하위이고 노동자에 대한 사회적인 이미지도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한국에서 경영자들은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이미지 메이킹되어 있고, 노동자는 과도하게 부정적으로 이미지 메이킹되어 있습니다.
그 책임의 1/3 정도는 노동조합 자체에 있습니다. 저는 ‘귀족노조’란 표현은 좋지 않다고 봅니다만 그런 노조들이 약간 특권적인 건 맞거든요. 재벌기업과 중소기업의 갑을 관계의 수혜자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 분들의 책임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현재 1,700만 노동자 중에서 비정규직이 거의 반 정도를 차지하는 현실, 전체 소득분포에서 40%의 사람이 월 200만원을 못 받는 상황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피고용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데, 자신을 노동자로 생각하지 않고 경영자의 세계관을 갖는다는 게 가장 심각한 문제이지요. 자기가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권리의 주체로서 권리의 행사를 하지 못한다는 게 큰 문제입니다. 초중고교에서 한 번도 노동자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이게 분단 체제 때문인데, 이걸 조정해서 시민들이 각자 시민이자 동시에 노동자인, 소비자이자 동시에 노동자인 자신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러자면 학교 교육부터 달라져야 되고, 평생교육에서도 기본적인 노동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구요.
이건 여담인데, 제가 박노자 교수 초청으로 노르웨이에 두 번 강연을 간 적이 있어요. 점심 먹으러 사무실에 들렀더니, 박노자 교수가 컴퓨터 앞에 앉아 제 강연 홍보 벽보를 직접 만들고 있더라구요. 제가 학생들 시키라고 했더니 그러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근로 계약이 없는 상태에서 학생들한테 일을 시키면 문제가 된다고 하더라구요. 명색이 나도 한국에서 노동문제에 관심이 있고 잘 아는 사람인데, 좀 부끄러워지더라구요. 그래서 학과 직원에게 시키면 안 되냐고 했더니 그 사람들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시킬 수 없다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마음 속 한편으로는 차가운 사회구나 싶었지만, 이렇게 하면 약자들의 권리는 보호되겠구나 했지요.


민노총과 전교조 “솔직히 답이 잘 안 보인다”

최근 몇 년 사이에 큰 논란이 되고 있는 대기업 거대노조의 문제, 대기업 노조의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의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합니까?

제가 1993년에 쓴 박사논문 제목이 ‘한국 노동자의 사회적 고립’입니다. 민주노총 만들기 전 전노협 시절인데, 이미 그때 기업별 노조로 가서는 희망이 없다는 게 제 결론이었습니다. 그 후로 점점 더 나빠졌고 1998년 외환위기 이후에 훨씬 더 나빠졌지요.
물론 그분들 입장에서 보면 그게 합리적인 선택입니다. 왜냐하면 사회적 안전망이 취약한 한국 같은 나라에서 사회적 연대를 하거나 자기보다 더 약자인 비정규직과 연대를 하는 것보다는 일자리를 가지고 있을 때 최대한 많이 받아내는 게 합리적이니까요. 그걸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리석은 거지요. 개별 노동자는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래도 민주노총은 전국 조직 아닙니까? 연대를 해야만 사회적인 지지를 받고 영향력도 커지는데, 너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해관계 중심으로 가다보니 사회적으로 점점 더 고립되고 정치적인 영향력도 적어졌습니다. 산별노조 운동이라든가 정치참여 운동도 그래서 나오게 된 겁니다. 그래도 보건의료노조라든가 이후에 만들어진 산별노조들은 비교적 건강합니다. 임금 부분에선 연대를 못하지만 사회활동에선 연대를 하고는 하지요. 하지만 전체적으로 민주노총은 현재로서는 상황 돌파를 할 능력이 없어 보입니다.

전교조, 참교육 여망 모아 교육 정책 센터 됐어야

전교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전교조도 참 민감한 문제이지요. 제가 88년에 교사를 하다 그만뒀으니 전교조는 저와도 좀 관계가 없지 않구요. 89년 전교조 사태 이후 제가 글을 쓰기도 했는데, 이런 내용입니다. “노동조합이라는 조직으로 가야한다. 하지만 전교조는 통상적 노조의 성격을 가져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전문직으로서의 교사의 존재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1950년대에 잘 나갔던 일교조가 조합주의에 매몰되어 무너진 걸 잘 봐야 한다.”
전교조는 전문직 노조와 공무원 노조의 두 측면을 다 가지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참교육 같은 교육의 본령을 놓치면 무너집니다.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면 안 되게 되어 있지요. 단체협약의 제한이 있기는 하지만 전교조가 교육의 문제보다 이익의 문제에 치중하는 경향이 있고, 내부의 정파 문제도 심각했지요. 전교조는 교육 정책의 센터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 정책적 기능이 너무 약하다 보니 평범한 교사 중 좋은 교사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놓쳤어요. 그러다 보니 송인수씨의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 같은 NGO 단체들이 만들어졌지요.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보면 민주노총, 전교조 큰 두 축이 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네요.

저는 이른바 87년 체제, 즉 1987년 민주항쟁의 동력으로 만들어진 노조, 시민단체, 진보정당이 어느 정도 시효를 다했다고 봅니다. 30년 동안 역할을 많이 했고 지금은 새로운 돌파구를 여는, 시즌2로 가야할 시점입니다. 그동안의 역할을 부정하는 건 아니지만, 노조도 진보정당도 시민단체도 새로운 길로 가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시장경제를 사회 규제 아래 두는 사회국가가 지향점

말씀하신 ‘시즌2’의 기본 방향, 가치는 뭐가 되어야 합니까?

<황해문화>에 ‘사회국가를 만들자’라는 칼럼에 이렇게 썼습니다. 시민운동의 임파워링, 자력화를 통해 정당을 정당답게 만들고, 그걸 통해 국가를 바꾸자고요.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정체성만 고집해서는 잘 안 풀립니다. 한국은 남북관계 변수가 너무 커서 남북한 평화체제가 되지 않고서는 복지국가가 되기 어렵습니다.
우리나라는 분단체제와 준전쟁체제에 의해서 고속성장을 했고, 개발독재의 성과가 나름대로 있지만, 재벌 체제와 승자독식구조, 관료특권이 신자유주의와 결합되어 한국적 신자유주의체제가 만들어졌습니다. 말은 무한경쟁이라고 하지만 어떤 세력은 경쟁의 무풍지대에 있고, 어떤 사람들은 과도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국가’로 가야한다는 게 제 주장입니다.
‘사회국가’란 독일 바이에른 헌법 3조에 나오는 말로 독일은 스스로를 ‘sozial staat’, 즉 ‘social state’라고 칭했습니다. 모든 걸 시장의 자유에 맡기는 자유국가와 대비되는 개념으로, 경제체제를 사회규제 아래에 둔다는 게 특징적인 개념입니다.
우리 사회가 ‘사회국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외환위기 이후 지난 20년 동안, 아니 19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의식 속에 깊이 뿌리내린 능력주의, 경쟁력 지상주의, 승자독식의 문화를 넘어서야 합니다. 물론 힘겨운 일이지요. 그러나 우리의 지난 20년은 사회의 기업화, 기업국가의 시대였습니다. 촛불행동은 바로 국민들이 자기개발 경영자, 주식투자자 그리고 소비자로서 정체성을 되돌아본 국민 재교육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지요. 이제 우리는 기업국가, 경영국가에서 벗어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것은 노동을 단기적 비용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사회적 주체로 자리매김하는 일이지요.
큰 틀은 사회국가로 가되,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의 적폐라 할 수 있는 관료 특권을 없애고, 민간의 자력화를 주장합니다. 이때 민간은 지역사회와 노조인데요, 저는 21세기의 노조란 기업별 노조가 아니라 불안정 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 모델이 필요하고, 오스트리아 등에서 실시하는 노동회의소 같은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정규직들은 수직적 갑을관계 때문에 노조 못 만듭니다. 이 사람들을 대표할 수 있는 별도의 조직이 필요한데, 협동조합적 노조도 좋구요. 아무튼 일용직, 알바 등을 묶어낸 새로운 노조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우리 사회 지식 재생산 구조를 전면 재편해야

시민운동은 그동안 중앙정부를 비판하는 참여연대식의 운동이 많았는데, 이제는 일상의 영역으로 내려와야 됩니다. 정당은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려야 하구요. 지금 같아서는 정당이 정책적 기능도 할 수 없고 이합집산 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를 바꾸기 위해선 선거법과 정당법이 먼저 바뀌어야 합니다. 지역사회에서 시민운동과 정당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시민운동으로 성장한 사람이 정당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이 지식사회 문제인데, 이게 바로 제가 ‘다른 백년’을 만든 취지이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지식의 재생산 구조를 뒤집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지식 재생산 구조 재편’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까 이 대목에서 평생교육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역할이 있겠습니까?

평생교육이 할 부분이 많지요. 촛불시위와 대선 이후 한국 사회는 큰 전환기에 섰습니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수없이 많지만,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교육정책, 즉 국가의 미래를 위한 고급인력 양성과 장기 국가발전 전망 수립입니다. 그런데 교육정책이라 하면 우리는 언제나 대학입시 개편을 떠올리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나 사회의 지력(智力), 즉 집단적 이해력, 판단력, 그리고 독자적인 학문 생산능력입니다. 지력은 국제 대학 랭킹에서 국내 대학들의 순위, 혹은 교수들의 영어 논문 편수에 달려 있는 게 아니라 대학이 국가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지식을 얼마나 생산해 낼 수 있는가, 인류의 미래를 위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제가 ‘세종시에 사회과학원을 설립하자’라는 제목으로 <한겨레>(2013년 6월 14일자)에 칼럼을 쓴 것도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겁니다.
우리나라 대학은 자리를 얻기 위한 간판 따기 장소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그러다 보니 학문적 기능도 없고 교육 기능도 없어요. 우수한 학생들 싹쓸이 입학시켜 졸업시키는 게 상위권 대학의 주요 관심사이고 나머지 대학들은 그 대학들 쫓아가고 있는 중이지요. 저는 대학은 어느 정도 보통교육이 되어도 좋다, 평준화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학원은 엘리트 교육이 되어야 한다, 정말로 생각이 바로잡힌 우수한 사람들을 뽑아 훈련시켜 각계에 배출시키는 곳이 대학원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SKY 대학은 학부대학이고 대학원은 텅 비어있어요. 과정은 있는데 다들 유학을 갑니다. 유학 다녀온 사람들이 미국식 마인드로 한국에 들어오니 이게 말이 안 되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국내에서 박사들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자는 게 저의 주장이고, 인문과학은 한중연이 있고, 자연과학은 포스텍이나 카이스트도 있는데 사회과학은 자체의 박사를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으니 ‘사회과학원’을 만들자는 이야기입니다. 위치는 수도권 집중을 완화시키기 위해 세종시나 대전, 전주 등 남쪽으로 내려 보내는 게 좋을 것 같구요. 학생이나 연구자들은 꼭 서울에 있을 필요 없거든요.



지식의 외국 의존, 주요 대학의 지위 독점 구조 깨야

저는 지식의 만성적인 외국 의존, 서울 주요 대학의 국내에서의 지위독점 구조를 극복해야 한다고 봅니다. 한국의 정치 사회에서 제기되는 문제의식을 가진 사회과학 박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가 사회과학원을 설립해야 합니다. 서울의 단극적인 지식권력 독점구조를 다극화하고, 지방 국립대학들이 사회과학 연구의 허브 기능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식생산 생태계도 전면 개편해야 하구요. 국내에서 박사 받아도 취직할 수 있게 해야 되고, 유학에 너무 많은 돈을 지출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은 미국 박사 아니면 안 됩니다. 서울 메이저대학의 사회과학쪽 교수는 90%가 미국 학위자입니다. 국수주의 생각이 아닙니다. 현재의 지식 종속 구조에서는 이론이 생산될 수 없고, 정책수립에서 창의성과 독자성이 생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시민사회 만들고 싶고, 좋은 정당 만들고 싶고, 좋은 언론 만들고 싶어도, 사람이 없으면 안 되지 않습니까?
상당수 대학을 평생교육기관으로 개편하는 작업도 아울러 추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초중고 때 시민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니 성인이 되어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평생교육에서 이걸 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지식생산 체계를 재편해야 됩니다.

새로운 세대를 묶어낼 공급자의 준비 필요

80~90년대 학술운동의 최전선에 계셨는데, 요즘의 학술운동은 어떻습니까?

망가졌지요.(웃음) 80~90년대가 황금기였습니다. 저희는 학술운동을 해도 대학에 자리를 잡고 밥은 먹고 살았는데, 저희 후배들은 밥도 못 먹고 살게 되었어요. 1990년 대학원들이 집단적으로 요구를 해서 김세균, 김수행 교수가 서울대로 간 그 사건이 정점이었고, 이후 쭈욱 내리막으로 치달았습니다. 대학이 끝없이 보수화되었지요. 그러니 학계에서 젊은 세대가 안 만들어지게 되고, 진보적인 학술지 등이 많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한국연구재단에선 논문 위주로 업적 평가를 하다 보니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없어졌습니다. 그걸 했다가는 승진도 안 되고 취직도 안 되니까 안 쓰는 거예요. 언론도 예전에는 학술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어요. 학술면이 전부 책소개로 바뀌었어요. 공급자도 제대로 된 이론을 못 만들어내고, 수요자도 딱딱한 것보다는 미디어 등 소프트한 쪽으로 관심이 가니 그렇게 된 것이지요.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에 희망이 있나요?

그럼요. 우리 사회가 역동적인 사회이고,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민주화운동 승리의 기억들이 남아있습니다. 일본은 승리의 기억이 없는 나라이지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의의 기준, 감각도 있습니다. 저는 세월호가 결국 촛불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세월호를 처리하는 박근혜 정부를 보며 느꼈던 분노와 국가에 대한 불신이 촛불로 나왔다고 보거든요. 이 촛불을 통해 시민들의 역량이 확인 됐고, 특히 그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청년층이 이런 경험을 한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부, 청년층 등 과거의 전통적 사회운동과는 관계없는, 새롭게 등장한 세력들을 어떻게 담느냐가 새로운 민주주의의 관건입니다. 작년 말부터 올 초까지 서울 근처 10군데 정도의 지역운동 단체에서 강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모이긴 많이 모여요. 그런데 강사는 50~60대 아저씨들로 옛날 운동권식 사고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강생은 완전히 새로운 층이구요. 그러니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지요. 제가 의정부, 안산, 평촌, 성남 등 10군데 다닌 곳에서 느낀 현장 보고입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준비가 절실한 까닭입니다.

30여 년 전과 비슷하게 말을 정확하고 논리적으로 하시네요. 정리하는 데 품이 덜 들 것 같습니다. 장시간 말씀, 감사드립니다.

▲ 인터뷰가 끝나고 진흥원 사무실 앞에서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정책홍보팀 김혜영 팀장, 전아림 주임, 김영철 원장, 김동춘 교수, 김계환 위원, 이유정 작가

정리 / 김영철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원장
이유정 <다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