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mile

컨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스스로 마음을 일깨우는 힘 다들

smile

스스로 마음을 일깨우는 힘 다들

뉴스레터 신청하기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다

여행학교 ‘로드스꼴라’

이전 컨텐츠 다음 컨텐츠 최상단으로
지금까지 깨움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의 글로 채워졌습니다. 이번호는 <다들> 편집진이 직접 길에서 배우는 이들을 만나 배움을 깨워 봅니다.

10년 전, ‘길 위에서 배우다’라는 모토로 시작한 로드스꼴라. 제목 자체가 ‘길 위의 학교’라는 뜻입니다. 로드스꼴라에는 교사와 학생 대신 길별과 떠별이 있습니다. 길잡이 별이 선생님, 길떠나는 별이 학생입니다. 또한 이곳에는 언니, 오빠라는 호칭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닉네임을 부릅니다. 길 위에서 동지가 되는 학교죠. 인천공항에서 몽골로 향하는 길별과 떠별을 배웅하며 길 위에서 배우는 로드스꼴라 이야기를 전합니다.

로드스꼴라는 두 개의 트랙으로 돌아갑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전일제 학교로 운영되는 로드스꼴라와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만 운영하는 주말 로드스꼴라가 그것입니다. 전일제 로드스꼴라는 16~22세 떠별들을 받고, 4학기제로 운영되며, 1학기에 한 달 간 여행을 떠납니다. 주말 로드스꼴라는 14~24세까지 학생을 받고, 한 달에 한번씩 2박3일 국내여행을, 여름방학에는 해외여행을 한 차례 다녀옵니다. 전일제 로드스꼴라는 여행을 가기 위해 여행지의 모든 것을 공부하고, 다녀와서도 보고서나 동영상을 만드는 등 매우 타이트하게 돌아가는 교육 프로그램이며, 이에 비해 주말 로드스꼴라는 현장체험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여행을 떠나므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편입니다. 두 학교 공히 화장과 담배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길 위의 학교 로드스꼴라를 만들고 지금까지 길별로 일하고 있는 김현아 대표교사를 만나 로드스꼴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여행사와 함께 시작한 길 위의 학교

로드스꼴라는 어떻게 시작되었습니까?

하자센터에서 사회적 기업을 인큐베이팅할 때 공정여행을 주제로 하는 여행사 ‘트래블러스맵’과 ‘길 위에서 배우고 놀고 연대하다’는 슬로건의 학교 로드스꼴라를 동시에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를 동시에 했던 이유는, 어른들에겐 일을 하면서 동시에 아이들이 성장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하고, 아이들에겐 학교와 회사가 같이 있으니까 ‘일이란 무엇인가’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노동과 학습을 동시에 배우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초창기엔 교사들 외에 여행사 직원들이 수업하기도 했고, 사무실과 교무실이 같이 있어 아이들이 들락날락하며 여행사 직원들을 선생님으로 여겼어요. 그런 체제로 4~5년을 가다가 트래블러스맵은 청년 허브로 이전하고, 로드스꼴라는 서울시로부터 교사 2인의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됨에 따라 각자 독립하게 됐어요.

▲ 러시아에서 고려인에게 직접 이주 역사를 듣고 있는 떠별들

처음 학생들을 모집했을 때, 어떤 학생들이 모였나요?

처음 모집할 때는 여행학교라는 개념 자체가 낯설고, 유명인도 없으니 저희끼린 학생이 8명만 모이면 좋겠다고 했어요. 마침 학교설명회하기 전에 한겨레신문에 인터뷰를 하고 기사가 크게 나서 학교설명회에 50~60명 정도의 많은 사람들이 왔습니다. 설명이 끝나자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그 학교 내가 가고 싶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재작년에는 어른들을 위한 로드스꼴라를 쿠바에서 3주 이상 진행하기도 했지요.
1기들이 20여 명 들어왔어요. 면접을 볼 때 제일 많이 물어보는 게 학교에 대해 정확한 이해를 하고 있는지, 너희가 정말 하고 싶어서 왔는지(혹시 부모님이 가보라 해서 온 건 아닌지)를 물어봐요. 여행학교라고 하면 신나게 여행 다니면서 재밌게 보낼 수 있겠다는 로망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게 굉장한 착각인 거예요. 여기가 공부를 빡세게 하는 곳이에요. 요즘은 청소년을 위한 여행 프로그램이 많아요. 여행에 대한 로망을 채우려면 그런 프로그램들을 따라가는 것이 더 좋아요. 로드스꼴라는 가기 전에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돌아와서는 자기 나름의 해석을 하는 작업을 해야 해요.
처음에 시작할 때는 나이대를 15세에서 22세로 잡았어요. 내 인생의 목표 설정이 시작되는 나이가 중 2쯤이라 생각했고, 대학교 입학해서 “이거 아닌가봐.”하고 휴학하고 저희 쪽에 합류할 수 있는 나이가 22세까지라 봤어요. 그런데 4기 지나고부터 15세는 강의를 소화하기가 벅찬 것 같아 16세로 바꿨어요. 대신 주말 로드스꼴라는 즐거운 학교라 나이를 좀 열어놨어요.
저는 로드스꼴라에서 나이대를 열어놓길 잘했다고 느껴요. 사람들이 다양한 나이대의 아이를 받으면 힘들지 않냐? 16세가 듣는 강의는 22세에게는 너무 쉽고, 22세가 알아듣는 강의는 16세에게는 너무 어렵지 않냐고 물어봐요. 그건 아니에요. 강의의 수준이 높고 낮은 건 별 문제가 되지 않고, 자기 경험치에 따라 가져간다고 생각해요. 14세는 14세만큼 가져가고, 24세는 24세만큼 가져가는 것 같아요.
나이대를 열어놔서 또 하나 좋은 점은 서로가 서로를 잘 돌봐요. 우리 학교에선 언니, 오빠라는 호칭을 쓰지 않아요. 그런 호칭을 들으면 잘해줘야 한다, 의젓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죠. 그래서 닉네임을 부릅니다. 사회적으로 짜여진 부분을 느슨하게 풀고, 1:1의 인격체로 동등하게 만나 작업해보자는 뜻입니다. 선생님 대신 길별이라는 호칭을 쓰고 닉네임을 부르는 것 역시 선생님이란 말 속에 학생들이 반항하고 싶어지는 기분을 느끼기 때문이죠. 길 위에서 동지가 되고, 서로가 서로를 돕는 존재가 되도록 장치를 잘 했다고 생각해요.

▲ 길가온2과정 중 영국여행

여행에서 만나는 위기를 교육 과정 안으로 끌고 들어와

지금까지 힘든 적은 없었나요? 위기나 고비가 있었던 적은?

감사하게도 큰 위기는 없었어요. 훌륭한 교사를 양성하기 위해서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들(월급, 부지 등)이 힘들었지 떠별들과의 관계에선 힘든 게 없었어요.
아이들과 한 달 동안 먹고 자고 하면, 작은 일로 싸우지 큰 일로 싸우지 않아요. 세계평화, 남북통일에 관한 건 토론이 가능하잖아요? 일하다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여행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힐링하는 개념이지만, 아이들에게 여행은 공부하는 현장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밤에는 다 같이 모여 앉아 우리는 왜 작은 일에만 분개하는가를 토론하는 거죠.
하와이에 갔을 때 한 명이 여권을 잃어버렸어요. 보통 3~4명이 한 팀을 이루는데, 그 팀이 영화를 만들기로 한 팀이에요. 여권을 잃어버렸을 때는 대사관을 찾아가고 여권을 재발급 받아야 하는데 그걸 잃어버린 아이 혼자 하는 게 아니라 팀원들이 다 같이 하면서 아예 그 과정을 교과과정 안으로 넣어, 영화로 찍었어요.
또 한 번은 미국 경유해서 볼리비아 라파스로 들어갔는데, 짐 5개가 도착하지 않은 거예요. 4개는 돌아왔는데, 1개는 끝까지 돌아오지 않았고, 짐이 없는 친구는 소지품 하나 없이 두 달을 여행해야 했어요. 그 친구를 위해 아이들이 옷도 나눠입고, 돈도 나눠주면서 함께 여행을 꾸려갔어요. 교사들이 이렇게 하자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의논하여 해결책을 제시하는 거죠.
교사들이 주제를 설정하고, 세팅할 수는 있지만 돌발 상황이나 위기상황에 대처하는 것은 결국 학생들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떻게 대처해나갈 것인가를 배우고 인생의 위기상황에서도 차분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됩니다.
지금도 기억나는 두 장면이 있어요. 1기 애들이 안나푸르나에 갔는데, ‘소울’이란 닉네임을 가진 학생이 “야호!”하고 폴짝 뛰어내리다가 발을 접질린 거예요. 그때 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핫팩을 안기고, 어디가 아픈지 말하게 해서 스스로 납득하도록 하고 안심시키는 것밖에 없어요. 하필 그때 또 마을 의사가 아랫동네 잔치에 가버려 없었어요. 다음 날 소울이 발이 보라색으로 부어올랐고, 포터, 교사, 가이드와 함께 마을에 남았어요. 나머지 아이들은 저랑 같이 산에 올라갔죠. 밤마다 닫기 모임을 하는데, 그때 다들 손을 꽉 잡고, 5초 동안 소울이가 빨리 회복되도록 마음을 모았어요.
그런데 우리가 산 정상을 200m 앞둔 시각, 운무가 자욱하게 끼었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소울이가 와요!! 소울이가 와요!!”하며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안개 속에 사람의 형체가 드러나는데, 밑에 남겨놓고 왔던 4명이 온 거예요. 의사에게 진단받고, 올라가고 싶다는 아이의 의지를 존중해 올라온 거죠. 우리가 사흘 만에 올라온 곳을 소울이는 지름길로 이틀 만에 올라왔어요. 그리하여 4130m를 모두 다 같이 올랐어요.
그때 제가 제일 허약해서 일행들 마지막에 따라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 위에서 17살의 덩치 큰 학생이 뛰어내려온 거예요. 고산병 때문에 그렇게 뛰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 뛰어내려왔길래 “야, 뛰지마” 야단쳤더니 “어딘(김현아 교사의 닉네임)이 가방을 매고 온다 그래서요….”하더라고요. 걔가 제가 힘들까봐 가방을 대신 들어주러 온 거였어요. 그때 속으로 무척 감동했어요. 그 아이는 로드스꼴라 졸업 후 트래블러스맵에 취직해 2년을 다녔고, 안나푸르나를 2번이나 더 올랐어요.

▲ 전쟁의 기억, 기억의 전쟁- 베트남 여행, 베트남 전쟁과 평화를 다룬 연극 <보단 나의 이름을 불러주세요> (왼쪽부터)

10년을 지켜보면 모든 아이들은 훌륭해져요

저희 아이도 로드스꼴라에 다니라고 권유하고 싶네요. 그런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아이가 부쩍 달라져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는 않아요. 여행의 영향은 10년쯤 지나서, 살다보면 배꼽 밑의 힘으로 남아있는 것 같아요. 여행 한번으로 사람이 확 바뀐다면 누군들 여행 보내지 않겠어요?
1기에 따슬이라고 있었어요. 이 아이는 시작파티에서 자기 소개를 할 때 마이크를 들고 “나는 공부하기 싫어서 여기 왔어요.”라고 발표했던 아이에요. 그 소리를 듣고 공부 잘하던 신입생의 부모가 열 받아서 파티장을 나가버렸을 정도에요. 그랬던 아이가 4학기 때 <백제의 길, 백제의 향기>라는 책을 출간했어요. 당시 부여, 공주, 익산을 거쳐 일본 교토, 나라까지 백제의 길을 따라 가는 여행을 했는데 따슬이가 책팀이었거든요. 어느 날 저에게 “근데 사학과가 뭐하는 데에요?” 질문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에게 묻지 말고 대학교에 전화를 걸어 물어보라고 한 적 있죠. 책팀에서 따슬이는 백제부흥운동 부분을 맡았는데, 자료조사를 해서 저도 못찾은 책을 찾아온 거예요. 책을 찾을 줄 안다는 것은 뭐가 중요한 것인지 이미 안다는 거죠. 그때 저는 이 아이가 공부를 잘 하는구나 했습니다. 따슬이는 졸업 후 고향에 내려가 해녀학교를 다니고 하더니 건축학과에 수석으로 들어갔어요. 공부가 싫어서 로드스꼴라에 들어왔다는 아이가 이렇게 된 거죠. 그러니까 아이들을 믿어보세요. 10년 정도를 두고 보면 아이들이 변하는 걸 알 수 있어요.

선생님은 어떻게 로드스꼴라를 만들게 됐나요?

저는 80년대 중반에 대학교를 다녔어요. 우리 세대에게는 꼭 사회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는 부채의식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대학 졸업 후 항상 쓰리잡(3job) 인생이었던 것 같아요. 저의 본원적 정체성은 글을 쓰는 사람인데, 그건 돈이 되지 않는 일이었고, 그래서 돈 버는 일로 학원, 과외 등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죠. 그리고 사회적인 활동도 했어요. 이를테면 청계피복노동조합에 가서 글을 가르친다든지. 나중에는 장애인, 이주노동자, 베트남전 피해자를 위한 ‘나와 우리’라는 시민단체를 만들었어요.
초창기에는 따로 놀았는데, 쓰리잡 인생을 20년쯤 하다 보니 그것들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합쳐진 거예요. 이렇게 합쳐진 게 바로 로드스꼴라가 아닌가 싶어요.
제가 하자센터에 드나들었던 건 글쓰기를 가르치기 위해서였어요. 그러면서도 여전히 나 같은 사람은 교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밥벌이를 위해 했던 일이 결국 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어요. 제가 로드스꼴라를 시작했을 때가 30대 후반이었는데, 그 나이쯤 되니까 애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뭔 짓을 해도 괜찮아요. 교사는 나뿐만이 아니고 앞으로도 좋은 스승을 만날 기회는 있다, 내가 이 아이의 모든 고민을 풀어주지 않아도 된다, 이 아이의 사춘기 2~3년에 함께 하면서 애들이 씨름을 해달라면 씨름을 해주고 샅바를 잡아달라면 잡아주면 된다 생각하자 편해졌어요.
아이들은 과정 중에 있는 사람이고, 저는 모든 아이들은 다 훌륭해진다고 믿어요.

▲ 이탈리아 협동조합 프로젝트. 왼쪽부터 경제사 강의, 협동조합 방문, 길 위에서의 공부

환대 받는 아이가 환대 하는 어른이 된다

저는 아이들에게 주머니 몇 개만 만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해요. 위기가 닥쳐왔을 때 꺼내서 던질 수 있는 파란 주머니, 빨간 주머니 몇 개만 만들어주면.
그런 맥락에서 여행이 참 좋은 것 같아요.
여행학교는 기본적으로 네트워크 학교예요. 아이들을 데려가면, 세계의 어떤 어른들도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주세요. 100이면 100을 다 주세요. 그 사람이 사회에서 만들어내고 있던 인적, 물적 토대를 다 주시는 거죠. 그래서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해요. “근데, 우리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
저는 그게 여행이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경험을 통해 아이들의 내부에 다른 사람을 환대할 줄 아는 힘이 생기는 거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참 좋은 어른을 많이 만나고 그걸 통해 배우는 거죠. 교사가 입으로 가르칠 수 있는 건 30% 밖에 안돼요. 나머지는 삶을 통해 보여주는 거예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 환대의 마음을 배우는 게 여행에서 가장 크게 배우는 거라 생각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이렇게 안살아도 되네?”하는 걸 배웁니다. 한국에선 동일한 출발 선상에서 ‘달려’하고 막 달려나가잖아요? 그렇게 강박적으로 살지 않아도 삶이라는 게 살아지는구나를 여행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거예요.
아이들이 가끔 초대강사를 모시기 위해 편지를 쓰는데, 다들 답장을 해주세요. 베트남 공부를 할 때 <무기의 그늘>의 소설가 황석영 선생을 모시려고 편지를 썼어요. 황석영 선생이 그렇게 답장을 잘해주시는 분이 아닌데, 지금은 작업 중이라 못가지만 작업 끝나면 꼭 가겠다고 바로 다음날 답장을 보내주셨어요. 또 주말 로드스꼴라에서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책을 읽고 영상을 찍었어요.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을 아이들이 하나씩 이야기 하는 영상인데, 이걸 지은이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에게 보냈어요. 그랬더니 답장이 왔어요. 너무 잘 봤고, 다음에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오면 좋겠다고. 청소년들이 연락을 하면 어떤 작가들도 거절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이 자기가 진심으로 이야기하면 들어준다는 걸 알게 되는 건 참 좋은 경험이네요.

네, 맞아요. 그러기 위해서는 그 전에 내가 먼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하죠. 그래서 로드스꼴라의 첫학기 목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는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선생님이 하신 얘기는 제 인생에서 들은 얘기 중에 네 번째로 재밌는 얘기 같아요’라는 표정을 지어라.”고 이야기해요. 처음엔 시켜서 듣지만, 그런 태도로 듣다보면 잘 들리고, 잘 듣다 보면 재밌고, 그래서 더 잘 듣게 되는 선순환이 일어나죠.
결국 여행이란 낯선 지역에 가서 낯선 사람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거잖아요? 귀를 열어놓는 훈련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 우유니 사막에서 길별과 떠별

김현아 선생님은 로드스꼴라가 공부는 안하고 여행만 하는 곳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행을 가기 위해 굉장히 열심히 공부하는 곳입니다. 공부를 하면 삶에 대한 이해가 생기고, 삶에 대한 이해가 생기면 삶이 덜 불안해집니다. 요즘 세상은 너무나 빨리 변하는데, 그런 세상에서 급류에 휩쓸리지 않고 적어도 파도를 탈 줄 아는 힘이 생기는 것, 그것이 공부를 하는 이유라고 그녀는 힘주어 이야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