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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마음을 일깨우는 힘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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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 키우는 게 나무 심는 것보다 낫지요

서재경 (남도학숙 원장/아름다운 서당 이사장)

<다들, 배움>에서는 우리 사회의 스승이자 시대의 사표와 함께 배움과 학습의 참된 뜻을 헤아려 봅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며, 웹진 <다들>의 발행인인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김영철 원장이 인터뷰 진행자(인터뷰어)로 나섭니다.

<다들, 배움>과 함께 해주신 분들
창간호고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
2호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
3호박원순 서울시장
4호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5호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6호박재동 한예종 교수
7호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
8호김제동 방송인
9호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10호이형우 마이다스아이티 대표
11호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12호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16호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장
17호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18호최열 환경재단 대표
19호김용택 시인

서재경은 누구인가?

1947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1966년 광주제일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국외대에 입학, 1974년 졸업했다. 졸업을 앞둔 1973년 10월 한국일보 서울경제신문에 기자로 입사했다.

4년 여 간의 기자 생활을 끝낸 후 대우그룹에 특채로 입사했다. 이후 22년 동안 대우그룹의 기획문화부장, 회장 비서실 상무, 중남미 본부장 등 중역을 역임했다. 1998년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보좌역으로 전경련에서 근무했다.

시대가 원하는 청년을 길러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2004년 여름 목포대학교에 제안했다. 이것이 ‘아름다운 서당’의 시초가 되었다. 이듬해 아름다운 서당(당시 ‘취업 능력 함양 아카데미’)을 설립하고 지금까지 이사장직을 맡고 있다. 2012년부터 2년 동안 서울신용보증재단 이사장을 지냈고, 2016년부터 제10대 남도학숙 원장으로 부임하고 있다.

1999년 미국 Who’s Who in the world 세계인명록, 같은 해 영국 International Biographic Center 20세기 인명록에 등재됐으며, 2001년 영국 IBC ‘20세기의 탁월한 인물’에 선정됐다.

1994년 문을 연 남도학숙은 광주·전남 출신 서울·경기도 유학생들의 기숙사로, 현재 850명의 대학(원)생들이 생활하고 있다. 작년 5월 취임한 서재경 원장은 13년째 ‘아름다운 서당’이라는 대학생 리더 양성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둘 다 인재양성의 요람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일보> 기자, 22년간의 대우 임직원 생활을 거쳐 지금은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서재경 원장(이하 서 원장)을 대방동에 위치한 남도학숙에서 만나 대학생 교육, 인재 양성의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회의실 벽 한쪽에 걸린 역대 남도학숙 원장 사진을 설명하고 있는 서재경 원장

인터뷰가 진행된 회의실에는 1대부터 9대까지 역대 남도학숙 원장들의 사진이 벽에 걸려 있었다. 서 원장은 가끔 회의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앉으면 사진을 보게 되고, 저 사진들 옆에 자신의 사진이 붙고 임기 끝난 다음에 뭐라고들 평가할까 생각하면 오싹해질 때가 있다고 했다. 역대 원장 중에서도 특히 1대 김준 원장에 대해 서 원장은 높은 평가를 했다.


초대 김준 원장님은 새마을운동으로 유명하신 분입니다. 이 분은 박정희 전 대통령과는 상관없는 사람으로, 원래 농민운동을 하셨던 분이에요. 그 조그만 운동이 성과를 내니까 박정희가 올라탄 것이지요. 김 원장님이 농민 잘살기 운동을 시작했는데, 농협대학에서 그걸 보고 농협대학 부설로 과정을 개설했어요. 거기서 교육으로 농민 지도자를 육성하는 일을 하시다가 그게 박정희 눈에 띈 거예요. 여기에 관청의 힘이 개입해 새마을 중앙회가 만들어진 겁니다. 그러다 전두환 시대에 권력이 뒤를 밀고 주무르자 새마을 운동의 원래 정신이 훼손됐고, 김 원장님은 손 털고 나왔습니다. 새마을 운동이 거기서 대가 끊겼지요. 그 후에 박근혜가 관 주도로 그걸 살려보겠다, 세계화한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정신이 죽은 운동은 뭘 갖다 대도 살아나지 못하지요.
김 원장님은 남도학숙 원장으로 있을 때도 여기서 기숙하며 학생들과 함께 체육도 하고 식사도 하고, 함께 호흡했습니다. 8년 전 타계하셨는데, 남도학숙의 전설이시지요.


파일럿으로 시작해 13년에 이른 ‘아름다운 서당’

아름다운 서당을 2005년에 시작하셨지요? 아름다운 재단과 이름도, 시기도 비슷한데, 혹시 두 곳이 관련이 있습니까?

아닙니다. 아무 상관없어요. 완전히 우연이지요.

아름다운 서당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어떻게 그런 구상을 하셨을까 놀랐습니다. 각계의 전문가인 퇴직자들이 무보수로 대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그런 발상이 어떻게 가능하셨는지요?

아름다운 서당이 이제 13년차에 접어들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어떻게 그런 발상을 했냐고 묻습니다. 하지만 처음 시작할 때는 거창한 생각으로 했던 게 아닙니다. 제가 2000년에 한국외국어대에서 초빙교수로 경영학원론을 강의했습니다. 3년간 했는데 첫 해는 일반 강의실에서 시작했다 2년차부턴 강당으로 옮겨갔어요. 학생들이 많아서지요. 처음엔 제 강의가 인기가 있어서 그런가 착각했습니다. 알고 보니 2000년부터 벌써 취직이 무서워지기 시작하고, 취직하려면 자기 소개서에 뭔가를 써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경영학 수업을 이수했다는 스펙이 필요했던 겁니다. 그런데 경영학부 교수들은 자기 학부 학생들의 수강신청만 받아들였고, 저는 외부에서 온 교수라 모든 학생들을 다 받았던 것이지요. 특수어학 전공자, 다른 학부의 학생들이 수강 신청하면서 ‘신청하면 받아주십니까?’라고 물어요. 저는 그런 속사정을 모르고 왜 당연한 걸 묻나 했어요. 그때 제가 눈을 떴습니다. 앞으로 취업문제가 심각해지겠구나….
제가 대우에서 22년 근무를 했는데 그 중 절반을 임원 생활을 했습니다. 초임 임원 때부터 면접에 들어가고, 신입사원 연수원 교육에도 참여하고, 그 교육 기획에도 참여했지요. 기업이 원하는, 세상이 원하는 청년상이 있거든요. 그렇게만 맞추면 취업이 어렵지가 않아요.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문제는 대학이나 가정에서 길러낸 청년들이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과 미스매치된다는 데 있지요. 그게 청년 문제의 핵심입니다.
저는 쉽게 생각했어요. 나는 기업의 인재상을 잘 아는 사람이고, 그런 사람을 뽑으려고 애를 썼던 사람이니까 이걸 아이들에게 가르쳐서 심어주면 될 것 같은데, 대학에서 1년에 2~4학점짜리 과목으로는 그것이 배양되고 싹이 트고 자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의 대량 생산으로는 좋은 사람을 만들기가 어렵겠으니 다르게 실험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지금의 아름다운 서당 프로그램을 러프하게 디자인했습니다.

성품 좋고, 역량 있고, 소명의식 있는 인재를 키우다

기본 컨셉이 어떤 겁니까?

세상이 환영하는 인재상을 먼저 그렸어요. 성품(Character)이 바르고, 문제를 맡기면 스마트하게 처리하는 역량(Competence)이 있고, 그러면서도 자신만의 소명의식(Commitment)을 갖춘 청년이라고 가설을 세운 거죠. 그 머리글자를 따서 ‘3C형 인재’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지만 한국계 최초의 백악관 차관보 강용호 박사가 쓴 책에 3C 인간형이 소개되어 있더라구요. ‘비슷한 시기에 어떻게 이렇게 비슷한 생각을 했지’ 싶었습니다.
그러면 뭘 가르치면 이 3C가 자라날까? 교육에서 성품을 가르친다거나 소명의식을 가르친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잖아요? 곰곰히 생각해보니 혹시 고전명작을 읽히고 세례를 주면 성품이 좋아지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가 대우 다닐 때, 30대 초반에 설악산에 1년간 살았던 적이 있어요. 호텔에서 관리부장으로 일하는데, 손님도 없고, 할 일도 별로 없고, 시간이 많이 남았어요. 시간 때우려고 동양고전을 구해서 읽기 시작했어요. 노자, 장자 같은 책들. 읽다보니 재미가 붙어서 ‘자’자 붙은 다른 책도 더 찾아 읽게 되고, 그러면서 이전까지 저의 생활이 너무 가벼웠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신문기자 생활을 하며 자기 잘난 맛에 살았고, 또 기관 출입하며 얼마나 까불었겠어요? 그게 부끄러워 땀이 나기도 했습니다. 이후 시간 날 때마다 좋은 책을 찾아 읽고 나름대로 독학을 했는데, 아름다운 서당을 디자인하면서 그 생각이 난 거예요. 고전 명작을 읽히면 성품이 좋아지지 않을까? 내가 까불다가 책을 읽으면서 덜 까불었던 것처럼. 그래서 고전명작 150권을 읽히자고 한 겁니다.
그 담에 ‘역량’이란 건 문제 해결 능력이거든요. 직장에서도 던져주는 것이 문제들이고, 그걸 받아 해석하고 자기 나름대로 접근해서 해결해내는 것이 능력 있는 사람의 태도이지 않습니까? 그러면 ‘실제로 기업 현장에서 빈발하고 있는 케이스를 만들어서 그걸 풀게 하자. 문제해결 능력이 자랄 것이다’ 생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봉사활동을 시키면 소명의식이 커지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자기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봉사를 하다보면 생각이 바뀌지 않을까 한 것이지요.

무보수로 도와주는 아름다운 교수진

강호의 고수들을 보수도 주지 않고 초빙하신 비결을 듣고 싶습니다.(웃음)

첫 해에는 저를 포함해 선생 2명이 시작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일종의 파일럿 프로젝트라 생각했고, 이렇게 10년 넘게 할 줄 몰랐지요. 디자인은 했는데 이게 맞는지 입증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상을 해서 성공하면 대학생들의 취업 문제를 푸는 솔루션으로 대학가에서 가져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2004년에 목포대학에 제안했습니다. 그런데 학생이 안 모여서 실패했어요. 그 다음 2005년에는 전남대에 제안했습니다. 다행히 학생이 16명 모였고, 1년 후 그 중 13명이 졸업했습니다. 3학년생을 뽑아 9월 1일에 시작하여 4학년 8월 31일에 졸업시켰죠. 4학년 2학기부턴 본격 취업 시즌인데, 졸업자 13명이 모두 취직을 한 겁니다. 총장이 제일 크게 놀랐고, 그 다음으로 제가 놀랐습니다. 총장은 이를 정규 프로그램으로 이식하고 싶어 보직 교수들과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어요. 그러나 교수들과 얘기해보니 교수들의 생각은 달라요. 조선대도 마찬가지였구요. 결국 대학 이식에 실패하고, 저는 프로그램이 아까워서 서울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 불을 끌 수 없어 소공동에 있는 YMCA전국연맹에 빈 사무실을 하나 빌려 2기를 시작했습니다. 3기부턴 남도학숙에서 했구요, 5년 동안 방도 빌려주시고 학생들에게 구내식당 밥도 먹여주셨습니다.
2기부터는 서울에서 선생들을 초빙했지요. 서울에선 선생들을 구하기가 비교적 쉽습니다. 인적 자원이 풍부하잖아요. 사람이 창업할 때는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도 제 주변의 <한국일보> 동기, 대우 직장 동료들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김수종 전 <한국일보> 주필은 그때부터 붙잡혀 지금은 아름다운 학당 제주의 교장입니다. 저 때문에 큰 짐을 지고 있지요. 지인을 중심으로 교수단을 꾸렸지만, 스크린은 철저히 했습니다. 교육의 품질은 결국 교사에게 달려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교사의 기준을 까다롭게 적용했습니다. 그 기준이란 게 대강 이렇습니다.
첫째, 자기 커리어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 예를 들어 언론계라면 평기자는 안된다, 논설위원 정도는 해야 된다. 기업이라면 중역 이상. 둘째, 글로벌 경험이 있을 것. 언론계라면 특파원 경험, 직장인이라면 해외 주재원을 했거나 해외 유학 경험이 있을 것. 셋째, 밥 걱정 안 하는 사람. 왜냐면 교사들은 재능 기부뿐만 아니라 돈 기부도 하거든요. 학생들에게 ‘치맥’ 사 줄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올해 13기를 뽑는데, 교수가 40명입니다. 제가 그 분들한테 이야기합니다. “아름다운 서당 교수야 말로 한국 최고의 명예의 전당(Honor Society)에 오른 사람들이다”라고. 돈 1억을 한 번에 투척하는 건 쉬울 수 있지만 100만원을 100번에 걸쳐 1억을 내라고 하면 생각이 좀 달라질 거예요. 학생을 맡아 1년 동안 계속 가르치고, 멘토링하고, 학생들과 밥도 먹고, 계절 따라 야유회도 가는 등 학생들을 계속해서 케어하고 관리한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고마운 분들이지요.

함께 읽는 100권의 책

커리큘럼은 어떻게 되나요? 수업 내용도 궁금하구요.

1년 동안 매주 토요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수업을 합니다. 토요일 오전에는 인문학, 오후에는 경영학을 공부하구요, 주중에는 봉사활동을 합니다. 고전 명작 읽기는 초기엔 150권이었는데 현재 100권으로 줄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론>부터 루소의 <사회계약론>, 밀의 <자유론>까지 서양을 만들어온 주요 사상을 백두대간 타듯 훑어보는 겁니다. 동양도 <노자>, <장자>, 성리학에 인도와 한국 철학까지 훑어 문사철로 넣고, 과학책 7~8권을 더했습니다.
한 학생이 100권을 모두 읽기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니까 당번을 정합니다. 입학식 하기 전 오리엔테이션을 할 때 배분하는데, 보통 1인당 7~8권이 배정됩니다. 운이 좋으면 500p 짜리 책이, 운이 없으면 800p 넘는 책이 배당됩니다. 이걸 통독하고 A4용지 10매로 요약 정리합니다. 요약 정리도 형식이 있는데 1. 저자소개 2. 작품이 태어난 시대적 배경 3.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세상에 던지는 메시지 4. 등장 인물 5. 스토리 6. 읽는 과정에서 감명 깊게 읽은 대목(밑줄 그은 구절 발췌) 7. 감상평, 이런 식으로 표준화되어 있지요. 발표자가 요약된 내용을 발표 일주일 전에 학우들에게 나눠줍니다. 일주일 동안 학우들은 그걸 읽고 궁금한 것은 인터넷 서칭도 하고 꽤 많은 내용을 파악하고 옵니다. 발표 당일은 책 1권에 40분 동안 발표하고, 20분 동안 질문을 받습니다. 모두 학생들이 하는 것이지요. 이때 교수의 역할은 학생들이 트랙을 벗어날 때 휘슬을 불어주는 정도입니다. 본질에서 멀어지면 다시 궤도에 올려놓은 것이지요. 전체 강평을 하긴 하는데 주로 격려 위주로 해줍니다. 인문고전 뿐 아니라 경영 케이스 스터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다닐 때 학교 수업은 주로 복습 위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무 준비 없이 학교 가서 선생님 수업 듣고, 덮어놨다가 시험 때 펼쳐서 복습하는 식이지요. 아름다운 서당은 예습 중심으로 짜여 있습니다. 스스로 예습해서 노트를 만들고 공유하고 발표하고 질문합니다. 예습을 하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 올 수 없습니다. 패러다임을 바꿔서 교육을 디자인 한 겁니다.

아름다운 서당은 사단법인인가요?

네, 작년에 사단법인화 했습니다. 마침 지금 13기를 모집 중입니다. 매년 6월말에 모집 마감을 하고, 7월 초에 면접을 하고, 선발한 학생들로 7월 10일에 오리엔테이션을 합니다. 여름 방학 동안 사전 학습을 하고 준비를 한 뒤 9월 첫 번째 토요일에 개강합니다.
수업 장소는 여러 곳을 전전하다 지금은 SK주유소 대리점하는 분들의 건물에서 하고 있습니다. 두 분이 자신들의 건물을 교실로 내놓으셨습니다. 점심도 제공해주시구요. 한국에 좋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접근법을 몰라 그렇지 도와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도움을 받아 지금은 단순히 ‘아름다운 서당’이 아니라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서당’이 되어가고 있습니다.(웃음)
아름다운 서당에서 지금까지 700여 명이 졸업했는데, 그 중 70명은 매달 1만원씩 모교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또 올해부터 졸업생 중 4명이 강의에 투입됩니다. 처음이지요.


서당 졸업생들의 취업률은 어떻습니까?

70% 정도 됩니다. 아름다운 서당을 마치더라도 대학을 졸업해야 취업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아름다운 서당 과정을 마치고 배낭여행을 떠나거나 교환학생 가는 애들도 있고, 공부하는 동안 흔들려서 성적 맞춰 들어왔던 학교를 관두고 전공을 바꾸거나 새로 시작하는 애들도 있어요. 그런 애들을 빼고, 대학 졸업하는 애들은 거의 100% 취직합니다. 겸손하게 말해서 70%이고, 대학까지 졸업하면 취직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성과가 좋은데, 좀 더 키워서 제도화해볼 생각은 없습니까?

왜 없었겠습니까? 여러 차례 시도를 했습니다. 5년쯤 지났을 때 교육부에 민원을 넣어봤습니다. 검증이 충분히 된 상태니까 제안서를 보내서 이 프로그램을 검토해보고 대학에 권장해 달라고 했더니 하급 공무원 하나가 연락 와서 왜 우리한테 이걸 보냈냐고 해요. 그래서 친분이 있는 국회의원을 통해 1급 공무원을 만나 브리핑을 한 적도 있습니다. 헌데 그 분도 똑같은 질문을 해요. ‘왜 이걸 우리한테 보여주냐’고. 기가 막히지요.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른다는 게 이런 경우 아닌가 싶어요.
다음으로 사립대 총장들에게도 제안서를 돌렸습니다. 사립대는 취업률에 관심이 높을 테니까 연락을 주지 않을까 싶었어요. 120군데 사립대에 보냈는데, 단 한 곳도 전화가 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과정을 겪고 나니 정말 어른들이 청년들의 실업문제에 진정성을 가지고 고민하고 있는지 의심이 되더군요.
다행히 작년 말에 전기가 생겼습니다.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이 남도학숙 최대의 후원자입니다. 제가 원장이 된 뒤 인사하러 갔는데, 그때 사무국장을 하시던 따님분이 아름다운 서당에 대해 미리 조사를 해 미팅할 때 열성적으로 설명하고 지지해주셨습니다. 그 말을 듣고 회장님이 1시간에 걸쳐 아름다운 서당에 대해 물어보시더니, 교육부에 제출한 제안서를 자신에게도 보내달라고 하셨어요. 내일 모레 연세대 총장을 만날 건데 보나마나 건물 지어달라고 할거다, 하지만 시설이 없어 공부 못하는 시대는 지났다, 교육자들이 옛날 사고방식대로 건물 타령만 하기에 이 제안서를 보여주며 프로그램을 해보라고 할 생각이다, 하셨습니다. 보내드렸습니다만, 반신반의했지요. 그런데 진짜로 연세대 총장에게 전달을 했고, 이 프로그램을 하면 돈을 대겠다고 했더니 총장도 약속을 했습니다. 그래서 연세대 송도캠퍼스에 올해 3월부터 이 프로그램이 들어갔습니다. 이런 식으로 조선대, 부경대에도 들어갔구요. 김재철 회장의 호를 딴 ‘자양 라이프 아카데미’라는 이름으로 우리 프로그램을 살짝 수정하여 들어간 것이지요. 이 프로그램을 하면 1억 5천만원을 지원하겠다니 대학들에서 계속 연락이 오고 있다고 합니다. 덕분에 자문하느라 좀 바빠졌습니다. 올 봄 학기부터 시작된 변화입니다.

한국 청년의 당면 문제가 집약된 남도학숙

역대 남도학숙 원장은 장관을 지낸 분들이 많았는데요, 서 원장님의 이력은 좀 다릅니다. 어떻게 남도학숙 원장이 되셨습니까?

지금은 총리가 된 이낙연 전남도지사가 연락을 해 왔습니다. 역대 원장들이 장관이나 국무위원 등 한 자리하신 분들이 많아 원로원 비슷한 느낌이 있었지요. 근데 이 총리는 생각이 좀 달랐어요. 남도학숙이야말로 청년 인재들을 키워낼 황금어장인데 명망가들의 손에만 맡겨서 되겠는가, 청년들을 이끌어줄 어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었지요. 알고 보니 원장 자리를 놓고 이력서도 들어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러나 이 총리가 거절하기 어려운 청을 다 뿌리치고 아름다운 서당을 주목하고 있다가 연락을 한 겁니다. 그것도 갑자기. 전임자 떠나기 보름 전에 연락이 와서 한번 해보지 않겠느냐 했고 수락했지요.


아름다운 서당 운영하시랴, 남도학숙 원장 하시랴, 저술활동 하시랴, 정말 바쁘시겠습니다. 남도학숙 원장을 하신 지 1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어떠십니까? 이곳도 바쁘지요?

여기야말로 24시간, 1년 365일 깨어있는 곳입니다. 35명의 스태프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남도학숙은 한국의 청년세대가 당면한 문제가 집약되어 있는 곳입니다. 한국 사회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열심히 드라이브를 걸고 달려왔으나 방향성에는 문제가 있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열심히 살아온 분들한테는 대단히 억울한 얘기지만, 잘못된 방향을 설정해놓고 열심히 뛰면 뛸수록 엉뚱한 데로 가잖아요? 그걸 여기서 느낄 수 있습니다.
학교에선 학생들에게 모두 1등을 향해 뛰도록 만들었습니다. 그 덕분에 학생들은 점수 따는 기계가 되어버렸습니다. 성능은 우수하지만, 사유할 줄 아느냐, 배려할 줄 아느냐, 자기 성찰할 줄 아느냐 물어보면 꽝입니다.
학교 밖에서는 돈을 향해 질주해왔습니다. 그럼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느냐, 삶의 가치를 증진시키느냐? 전혀 그렇지 않지요. 이렇게 두 개의 화상을 쫓아오다가 막다른 골목에 탁 걸린 형국입니다.
850명의 남도학숙 학생들 중 200명이 소위 SKY에 다닙니다. 얘들이 이 안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가장 리더십을 발휘하고, 한국이 앞으로 기대를 걸만한 젊은이의 모습이냐?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임기 동안 이 잘못된 문화와 방향성을 잡아주는 것이 목표입니다. 가장 방해가 되는 게 바로 학부모들입니다. 여전히 애들 등 뒤에서 1등이 최고고, 돈 많이 벌어야 하고, 다른 건 다 헛소리니 듣지 말라고 합니다. 공무원이 되어야 한다고 밀어요. 전체 학생의 40%가 공직을 원합니다. 한국의 장래를 짊어져야 될 젊은이들이 그런 정도의 생각에 머물러 있다고 하면 어른이 여기서 무얼 어떻게 해줘야 할까요? 굉장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남도학숙에 오는 아이들은 다 ‘인서울 대학생’이고, 이는 대한민국 같은 또래 청년층의 상위 7%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이 학생들의 의식구조가 눈앞의 것, 목전의 이해관계에 매달려 살고, 자기만 잘 되는 것에 관심이 높거든요. 그러면 한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 거냐는 겁니다.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요.

▲ ‘인재양성의 요람’ 남도학숙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이유정 기자, 김혜영 팀장,
서재경 남도학숙 원장, 김영철 원장, 전아림 주임

서 원장은 작년에 <제목이 있는 젊음에게>라는 책을 냈다. 70세를 맞아 살아온 인생을 종합해서 청년들에게 도움이 될 이야기를 남겨놓기 위해 낸 책이다. 차분하고 부드럽게 하나하나 설득해가는 그의 목소리와 태도에서 시니어의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를 봤다고 하면 오버일까?


“할 수 있으면 저는 아름다운 서당 클라스를 많이 확산시키고 싶습니다. 우리 같은 시니어의 할 일 아니겠습니까? 인생 다 살았는데, 기운이 조금이라도 있을 때 좋은 젊은이들을 키워놓고 가면 나무 심어 놓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정리 / 김영철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원장
이유정 <다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