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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마음을 일깨우는 힘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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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환경 용량 안에서 살자는 게 환경운동”

최열 환경재단 대표

<다들, 배움>에서는 우리 사회의 스승이자 시대의 사표와 함께 배움과 학습의 참된 뜻을 헤아려 봅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며, 웹진 <다들>의 발행인인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김영철 원장이 인터뷰 진행자(인터뷰어)로 나섭니다.



<다들, 배움>과 함께 해주신 분들
창간호고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
2호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
3호박원순 서울시장
4호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5호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6호박재동 한예종 교수
7호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
8호김제동 방송인
9호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10호이형우 마이다스아이티 대표
11호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12호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16호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장
17호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최열 (환경재단 대표)



최열은 누구인가?

박정희 대통령 시대인 1970년대, 반 유신운동으로 옥살이를 하다 문득 영감을 얻어 환경운동을 시작한 ‘대한민국 환경운동의 개척자’이자 우리나라 시민운동의 대표적인 1세대 활동가이다.

1949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67년 춘천고를 졸업하고 이듬해 강원대 농화학과에 입학해 1975년 졸업했다. 학생운동으로 수감생활을 하는 바람에 졸업이 늦어졌다.
1982년 한국공해문제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으로 연구소를 이끌었고, 1988년 공해추방운동연합을 만들어 공동 의장으로 본격적인 환경운동에 나섰다.
1993년, 우리나라 최초로 전국 규모의 체계적인 환경운동조직인 환경운동연합을 창립해 2002년까지 사무총장으로 환경운동연합을 이끌었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환경운동연합 공동 대표, 환경재단 상임이사로 활동했다.
2014년 환경재단 대표로 취임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최열 아저씨의 지구 온난화 이야기> 등 어린이 대상 환경 교육 저서 여러 권 말고도 <살아 숨쉬는 것은 모두가 아름답다> 등 많은 단행본을 냈다.


우리나라 식당에서 일회용 나무젓가락 대신 쇠젓가락이 놓이기 시작한 건 누구 덕분일까? 아파트 복도마다 있던 쓰레기투입구가 폐쇄되고 쓰레기 종량제와 분리수거가 일상화된 건? 장보러 갈 때 장바구니를 들고 다니게 된 건? 소소하지만 습관이라 고치기 힘든 이 모든 생활의 면면을 바꾸어낸 사람이 바로 환경재단 최열 대표이다.
그린피스 보트를 타고, 공해기업 불매운동을 하고, 4대강을 반대해 옥살이까지 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굵직굵직한 환경운동뿐 아니라 일회용 나무젓가락 안 쓰기 같은 생활운동도 소홀히 하지 않는 한국 환경운동사의 산증인이다.



최근 최열 대표는 사상 초유의 미세먼지 소송을 시작했다. 한국과 중국 두 나라 정부에 미세먼지로 인한 손해배상 민사소송을 청구한 것이다.


몇 주 전 미세먼지 손해배상 소송을 시작하셨습니다. 최근 미세먼지 악화의 원인을 따진다면, 국내 원인이 얼마쯤이고 국외 원인이 얼마쯤인가요?


계절에 따라 달라요. 11월부터 4월말까지 편서풍이 불 때는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우리나라로 날아옵니다. 반대로 여름에는 우리나라에서 중국으로 바람이 부는데다 난방도 하지 않아서 오염물질 자체도 적어요. 일 년의 반은 중국 영향이 크고, 반은 반대로 한국이 중국에게 영향을 주는 셈이지요. 백령도는 우리나라 육지에서 떨어져 있고 편서풍 영향권이라 중국 영향을 많이 받는 섬이에요. 그런데 최근 조사를 보면 백령도가 수도권보다 미세먼지가 심할 때가 많아요.
오염물질의 양도 문제지만 지구 온난화도 큰 영향을 줍니다. 지구 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면서 햇볕을 반사하는 양이 줄어들면 지구는 더 더워지고, 기온이 달라지면 제트기류가 변합니다. 그 때문에 편서풍이 약해지니까 공기가 확산하지 못하고 미세먼지가 한번 끼면 띠를 형성해서 움직이지 않아요. 한국, 중국에 미세먼지 띠가 형성되어 있어요.
미세먼지는 머리카락 굵기의 1/30인 초미세먼지와 1/7인 미세먼지로 구성됩니다.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기 때문에 우리가 “공기 좋네” 하는 것과 초미세먼지는 상관이 없어요. 이 작은 것들이 인간의 폐, 뇌, 호흡기에 달라붙어 병을 키우는 것이지요. 세계보건기구가 추정하길 미세먼지로 인한 조기사망이 매년 700만 명이라고 합니다.
2007년에 중국 칭화대에서 논문이 나왔는데, 미세먼지로 인한 한국, 일본의 사망자 수가 3만9백 명이라고 조사됐어요. 중국 사람은 훨씬 더 많이 죽었겠지요? 그런데 우리나라 신문들은 그 사실은 쏙 빼고 한국인 사망률만 보도해요. 중국에 미세먼지가 저렇게 많아진 이유가 뭡니까? 중국은 규제도 느슨하고 인건비도 싸니까 우리나라 공해산업, 사양산업의 공장들이 다 그리로 옮겨간 겁니다. 그렇게 중국을 ‘세계의 굴뚝’으로 만들어놓고 우리 스스로가 다시 피해를 보는 것이지요. 결국 자기 총으로 자기 뒤통수 쏜 겁니다. 그러니 중국에 문제제기를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도 잘해야 해요.
환경부 등 정부 쪽에선 ‘중국에서 미세먼지의 86%가 왔다’고 한단 말이에요. 그러면 국민들은 당연히 미세먼지의 86%가 중국 탓이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미세먼지 총량 데이터 자체가 없어요. 모아놓은 데이터도 군부대 등 주요한 부문은 다 빠져있고 허술해요. 그래놓고는 중국 탓이라고 몰아버린단 말이죠. 그러니 정부 발표를 불신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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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오염의 주원인은 자동차입니다. 10년 전 만해도 우리나라 디젤차 규제가 엄격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도 디젤차를 만들기 시작하자 개방하고, 규제를 완화합니다. 이명박 정부 때 ‘클린 디젤’이라는 말을 만들었어요. 디젤차가 연비가 좋은 건 맞지만, 연비가 좋다고 클린이 아니거든요. 에너지 자체가 오염물질이 적어야 클린한 건데, 연비 좋다고 클린을 붙여버렸단 말이에요. 버스는 디젤에서 천연가스로 바꾸는 추세인데, 승용차와 트럭은 시대를 역행하는 겁니다. 심지어 디젤차의 오염부담금까지 없애버렸어요.
재작년에 폭스바겐 사건이 터졌잖아요? 테스트할 때와 달리 실제 주행할 때 오염물질이 7배에서 23배까지 많이 나왔다는 사실 때문에 소송이 걸렸지요. 덕분에 디젤차의 오염도가 높다는 게 알려졌구요. 우리나라는 아직 디젤차의 오염도에 대한 조사도 없어요.
그 다음으로 오염물질이 많은 게 화력발전입니다. 가스발전소도 세워놓고 돈 많이 든다고 운영하지 않습니다. 저비용이라고 화력만 돌려댑니다. 기업은 돈을 벌지 몰라도 다른 모든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겁니다. 그런데 이것 때문에 생업을 박탈당했다면 난리가 났을 거예요. 생업에 타격이 없으니 다들 가만있는 거지요. 생업은 잃지 않았지만 국민들이 시들어가는 셈이지요. 아토피, 피부질환, 눈병, 호흡기 질환 등등으로. 균등하게 피해를 보면 불만이 적어요. 그래서 소송을 건 겁니다.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서요. 환경 문제는 인권의 문제거든요.



때마침 식사가 나왔다. 스테인레스 스틸로 만든 수저를 들며 최 대표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요즘은 이렇게 다 쇠젓가락이잖아요. 이거 다 운동해서 바꾼 겁니다. 제가 1988년부터 쇠젓가락을 가지고 다녔어요. 1988년에 도쿄에서 열린 세계환경대회에 갔는데, 인도네시아 대표와 인사하게 됐어요. 제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너희 나라가 우리나라 나무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이 잘라간다. 그렇게 잘라간 나무로 만든 젓가락을 한번 쓰고 버린다면서? 그렇게 나무를 많이 잘라가고는 심지 않아 우리나라가 사막화되고 있다. 내가 젓가락 한 벌 선물해줄테니 그걸 써라. 너는 환경운동가니까 그만큼 우리나라 나무가 보호될 거 아니냐?” 하면서 젓가락을 선물해 주더라구요. 그때부터 제가 젓가락을 넣어 다녔습니다. 식당에 가서 가방에서 제 젓가락 꺼내면 식당 주인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곤 했어요. 그렇게 시작해서 결국 일회용 나무젓가락을 없앴지요. 장바구니 운동도 우리가 제일 먼저 시작했어요. 1980년대 후반부터.
쓰레기종량제도 우리가 제안해서 만들어진 겁니다. 예전에는 아파트에 쓰레기투입구가 있었잖아요? 거기에 짬밥도 버리고, 형광등도 버렸단 말이에요. 그래서 쓰레기 수거하는 사람들이 다치고, 1층에는 바퀴벌레가 우글우글했지요. 종량제로 바뀌고 그런 문제들이 해결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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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생활운동을 하신 거네요. 당시에는 기업들이 최 대표님 나타나면 벌벌 떨지 않았습니까?


그랬지요. 가장 유명했던 사건이 1991년 두산 페놀 오염 사건입니다. 원래는 두산전자에서 부품 만들면서 페놀이 나왔는데, 그건 부품이기에 분리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두산의 대표적인 소비재인 OB맥주 불매운동을 한 거예요. 3월말부터 불매운동을 했는데, 그해 매출액 1천억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 틈을 타 크라운 맥주가 지하 150미터 암반수로 만들었다며 하이트 맥주로 상표를 바꾸고 나왔지요. 당시 하이트에서 저한테 CF모델이 되어달라고 왔었어요. 그때 제가 그랬습니다. “환경운동가는 상품이 되면 그날로 끝이다.”
맥주 회사 뿐 아니라 자동차 회사에서도 모델 되어 달라고 한 적도 있구요.(웃음)



지금은 환경운동이 엄청나게 커졌지만 최 대표님이 공해문제연구소를 하실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지요?


그렇지요. 공해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교도소 복역할 때였어요. 제가 1976년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6년간 안양교도소에서 복역했는데, 뭘 할까 고민하다 전공이 화학이라 공해에 대해 공부해보자 싶었어요. 내가 공해를 공부하겠다고 했더니 다들 “공해라도 배불리 먹자”고 했어요. 공해가 뭐가 급하냐, 먹고 사는 게 더 급하다는 것이었지요. 공부하려고 공해에 관한 책을 좀 넣어 달라 했더니 한국 책이 하나도 없는 겁니다. 전부 일본 책이라…. 옥중에서 아에이오우 일본어를 배워서 읽었어요. 그렇게 6년 동안 250권을 읽었지요. 독방이었으니까.
만약 내가 그때 공해 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 식품회사나 농약회사에서 일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박정희가 날 환경운동가로 만들어준 셈이지요.(웃음)
환경운동연합을 만든 것은 리우 환경회의에 참석한 다음입니다. 공추련(공해추방운동연합) 때 지구의 날 행사를 대대적으로 했어요. 세종로를 다 막고 행사를 치른 건 그때가 처음이었을 거예요. 그걸 계기로 1992년에 열린 리우 환경회의에 50여 명을 끌고 참석했는데, 그때 참가했던 사람들이 다들 충격을 받았어요. 환경운동이 환경단체만 하는 운동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겁니다. 여성운동, 농민운동, 노동운동이 다 거기 연결되어 있는 걸 처음 깨닫게 된 것이지요.
공해에는 국경이 없는데, 국내 운동단체라도 통합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국내 환경운동단체가 8개 정도 있었는데, 그걸 통합해서 1993년에 환경운동연합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단체에도 가입한 적 없었던 소설가 박경리 선생을 설득했고, 성균관대 장을병 총장, 대한변협 이세중 변호사를 모셔왔습니다. 저는 사무총장으로 일했지요. 이런 일을 하면 어용학자나 관변학자들이 “전문성이 없다”는 말을 늘 합니다. 그 말이 듣기 싫어서 전문가들을 영입해서 시민환경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산하에 환경정보센터, 환경교육센터, 환경법률센터 등을 만들었고, 전국 지역조직을 50여개 만들었습니다. 회원 8만 명을 확보한 뒤, 2003년에 그만두고 나왔습니다. 딱 10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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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와서 만든 게 환경재단입니다. 환경재단에서는 두 가지를 약속했고, 실천했습니다. 첫째, 우리는 환경문제를 운동으로 접근하지 않고 문화로 접근하자. 그래서 환경영화제를 만들고, 공연 등을 통해 재미나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시아 환경단체의 허브가 되자. 이를 위해 식수를 공급하고 태양광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얼마 전 ‘걸어서 세계 속으로’에 나왔던 방글라데시 벵골만의 생태마을도 저희가 모델을 만든 겁니다.
인도나 대만만 해도 의무교육 안에 환경교육이 들어가 있어요.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지요. 환경교육 자체가 완전히 고사했는데, 특히 이명박 정부 때 전국 환경교사모임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한 뒤 더욱 상황이 나빠졌습니다.
환경운동은 어릴 때부터 아이들을 교육시키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저는 아이들 대상의 책을 많이 썼고, 덕분에 아이들로부터 10만여 통의 팬레터를 받았어요. 아이들을 설득하면 어른도 설득할 수 있어요. 아이를 설득하려면 재밌어야 해요. 운동권은 재밌는 것도 재미없게 만드는 곳이잖아요? 그러지 않으려고 이외수 작가와 함께 ‘쓰레기는 인간이 남긴 욕망의 흔적이다’ ‘나무의 생이 종이컵으로 마치기엔 아깝지 않습니까?’ 같은 문구를 넣은 에코백을 만들고, 시인 김용택을 설득해 교장으로 앉히고 놀자학교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NGO단체들이 노령화되고 있는데 비해 환경재단은 덜합니다. 어린이 환경센터에서 14년간 어린이 그린리더 9만5천명을 양성한 일에 지금도 자부심을 느끼지요.



대선 후보들의 환경문제에 대한 공약을 살펴보시니 어떻던가요?


민주화되면 공해문제는 자동으로 해결될 거라고 했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요. 이번 대선 후보들의 공약을 살펴보니 구체적 방안이나 재원 마련은 미흡하지만 문제의식은 있더군요. 충남 당진 신규 석탄 발전소를 취소하겠다, 디젤차를 규제하겠다는 부분은 다들 동의했습니다.
문제는 재원 마련인데, 저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술, 담배처럼 가솔린과 디젤에 세금이 많이 붙습니다. 1년에 10조 가량 거둬진다고 해요. 이 세금은 공기를 더럽히며 걷힌 거니까 공기를 깨끗이 하는데 써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금의 80%를 도로를 까는데 쓰고 있는 겁니다. 평지에만 도로를 까는 것도 아니고 산을 다 뚫고 나라를 엉망으로 만들어가면서…. 건설업자와 자동차회사 등 결집된 소수에 의해서 느슨한 다수가 진 겁니다. 느슨한 다수를 이길 수 있게 하는 게 시민운동입니다. 이번 촛불집회에서 느슨한 다수가 결집했기에 탄핵까지 이루어낸 것 아닙니까? 환경도 마찬가지입니다. 10조의 세금을 환경을 살리는 데 써야 합니다.
재원을 그렇게 마련해서 다음 단계로 오염물질 총량을 조사한 다음, 사업장마다 오염허용량을 정해주고, 오염량을 점점 줄여나가는 겁니다. 줄여나가도 효과 없는 것은 폐쇄해야지요. 오래된 디젤차 없애고, 석탄발전소 폐쇄하고, 제철소, 시멘트 공장 등도 모니터링하구요. 그렇게 국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한 뒤에 중국과도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지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처럼 미세먼지에도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는 겁니다. 미세먼지 줄이는 비용 대비 효과가 높은 곳부터 확 줄여나가면 되거든요. 이렇게 하면 오염 총량이 줄어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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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과 환경운동은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다보스포럼의 의제로 제일 많이 나오는 게 빈곤, 양극화, 기후변화입니다. 거기에 최근 몇 년 전부터 4차 산업혁명이 보태졌습니다.
기후변화에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없습니다. 모든 문제가 연결되어 있지요.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건 지구에 묻혀있는 탄소통조림을 태웠기 때문입니다. 탄소통조림이 워낙 많아서 처음에는 막 까먹어도 괜찮았어요. 그런데 1980년대 들어서 쓰는 양이 지구 용량의 1배를 넘어섰고, 지금은 1.5배가 되었습니다. 이대로 간다면 2030년에는 2배가 넘을 겁니다. 이러면 파탄이 날 거 아닙니까?
환경운동은 지구가 가지고 있는 환경용량 안에서 살자는 운동입니다.
우리나라는 더 심각합니다. 한국 용량의 3배를 쓰고 있어요.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이 23%, 석유, 석탄, 철, 면화는 전부 수입하죠.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 땅보다 3배 정도 넓은 땅을 쓰고 있는 셈이죠. 이런 개념이 머릿속에 들어가 있어야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의식할 수 있습니다.
기후변화는 기후 양극화를 가져옵니다. 비가 오는 곳은 더 많이 오고, 가문 곳은 더 많이 가무는 게 기후 양극화입니다.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시리아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었지요. 그래서 농민들이 대거 도시인 다마스커스로 몰려들었고, 그들에게 독재를 하다 내전으로 이어진 겁니다. 내전 때 IS가 출현하고, 난민이 생긴 거구요. 그 난민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로 영국의 브렉시트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 모든 게 기후변화로 인한 거예요. 모든 혁명은 배고픔과 폭정 때문에 일어납니다. 식량, 재난, 에너지 문제가 기후변화와 죄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는 삶의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육식 대신 채식을 해야 하구요. 2070년이 되면 우리나라도 여름이 절반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같이 당장 눈에 보이는 걸 좋아하는 민족일수록 중요한 것의 순위가 자꾸 뒤로 밀립니다. 말로는 환경보호 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환경과 돈 중 택하라면 다 돈을 택하는 거예요. 특히 IMF 위기를 겪으면서 더 보수화되었지요. 인건비는 상승하는 데 생산성은 낮고, 그러니 기업에선 정규직을 안 뽑게 되고, 인건비가 싼 다른 나라로 공장을 이전합니다. 그래도 열심히 하면 된다고 했지만, 이제는 열심히로는 안 됩니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열심히 한다고 되질 않아요. 인류는 과거의 경험으로 미래를 예측해왔습니다. 그런데 그게 의미가 없어진 거예요. 세계기상기구(WMO) 사무총장조차 “우리 WMO가 축적해놓은 방대한 자료는 앞으로 기후를 예측하는 데 전혀 쓸모가 없다”라고 이야기합니다.


배움-05



한국 사람은 경험하지 않은 것에 뛰어들지 않아요. 남들이 잘되는 걸 봐야 뛰어들거든요. 그때는 이미 늦어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업의 수명이 점점 짧아져요. 크다고 오래 살아남지도 못해요. 지금은 크기가 아니라 빨라야 되거든요.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은 소수거든요. 그 소수 외의 다른 사람들은 다 탈락하는 거예요. 이것도 양극화되는 것이지요.
수명은 길어져서 100년을 사는데, 인생의 절반쯤엔 뭔가 새로운 걸 해야 하는데, 나이 50, 60에 새로운 걸 배우기는 힘들지요. 안 배우고 그냥 할 수 있는 건 로봇이나 기계가 하니까 일자리가 없어요. 그래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겁니다.
요즘은 특히 집값으로 들어가는 돈이 많아요. 대출금이나 월세를 내고, 교육비를 내고 나면 사용할 가용소득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그림 그리듯이 이야기를 하면 국민들이 이해를 하는데, 설명을 잘 못하니까 “나는 새빠지게 일하는데 왜 저 사람은 놀면서 100만원 받냐?” 하게 되는 겁니다. 돈이 있어야 쓰고, 경제가 돌아가는데 그걸 생각하지 못하는 겁니다.
치킨집 5만개가 계속 망해나가는 이런 시대를 바꾸기 위해선 대학을 개방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TV 채널을 10개 정도 만들어 각 세대별로 하고 싶은 공부를 선택하게 하구요. 그리고, 돈 주면서 공부시켜야 해요. 돈 안주면 공부 안하니까. 그렇게 해서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자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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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저희 평생교육 쪽에서도 4차 산업혁명 시기에 공교육 가지고는 모자란다는 인식이 있거든요. 대학에서 배운 지식들이 1년을 못가니까, 앞으로는 평생교육체제로 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1971년에 만든 캐치프레이즈가 있습니다. “전 생애를 교육기간으로! 전 국토를 교육장으로!”


저희가 요즘 말하고 있는 ‘서울은 학교다’와 일맥상통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지식반감기라는 말도 제가 10년 전부터 해왔던 말입니다. 옛날엔 대학교에서 한번 배우면 그걸로 30년은 써먹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2년이면 지식이 달라져요. 그러니까 반감기를 계산하면 대학 졸업해서 8년이 지나면 있던 지식을 다 까먹게 됩니다. 유발 하라리 라는 사람은 요즘 초등학생들은 배울수록 손해 본다고 했어요. 과거의 경험에서 배울 게 없으니까요.
요즘 직업 중에서 앞으로 없어질 직업 1순위가 회계사와 텔레마케터랍니다. 회계사는 인건비가 너무 높아서, 텔레마케터는 인건비는 싸지만 대량으로 필요한 직업이라서 로봇이 대체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기계와 경쟁하는 건 이젠 안 된다는 것이지요.
국민들이 일자리를 찾는 게 아니라 1인당 하나씩 몰입할 수 있는 걸 찾으면, 평균 수명 100세 시대를 살아갈 수 있지 않겠나 싶어요. 재미를 느껴야 몰입할 수 있고, 그래야 꾸준히 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최 대표님은 어떤 일에 몰입하고 있습니까?


‘움직이는 학교-에코 크루즈’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린피스 보트를 매년 탄지 15년이 되었는데, 그걸 한국에서도 만들고 싶어요. 노하우가 있으니까 프로그램이나 기항지 기획은 하면 되고, 5만 톤 급으로 2천5백여 명 정도가 탈 수 있는 배를 만들고 싶습니다.
객실은 분양하고, 대학과 제휴해서 프로그램을 만들고, 대기업이나 공무원 연수 등으로도 이용할 수도 있구요. 1년에 한번 정도는 다보스포럼처럼 세계환경포럼을 개최할 겁니다. 현재 2022년을 목표로 준비 중인데 만약 만들지 못하더라도 빌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추진하고 있어요. 어때요? 재밌지 않겠어요?


007▲ 인터뷰를 마친 뒤 기념 촬영을 했다. 왼쪽부터 이유정 작가, 김혜영 팀장, 최열 대표, 김영철 원장, 전아림 주임, 조한준 주임


정리/김영철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원장, 이유정 <다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