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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마음을 일깨우는 힘 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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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학력 신수설'(神授設)이 나라 망치고 있다"

조한혜정(연세대 명예교수)

<다들, 배움>에서는 우리 사회의 스승이자 시대의 사표와 함께 배움과 학습의 참된 뜻을 헤아려 봅니다.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며, 웹진 <다들>의 발행인인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김영철 원장이 인터뷰 진행자(인터뷰어)로 나섭니다.


 <다들, 배움>과 함께 해주신 분들
창간호고 신영복 전 성공회대 석좌교수
2호김신일 서울대 명예교수
3호박원순 서울시장
4호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5호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6호박재동 한예종 교수
7호홍세화 협동조합 ‘가장자리’ 이사
8호김제동 방송인
9호채현국 효암학원 이사장
10호이형우 마이다스아이티 대표
11호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12호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16호권지웅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 이사장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
조한혜정은 누구인가?

1948년 태어나 이화여고를 졸업했다.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UCLA에서 문화인류학을 전공했다.
1979년 귀국해 연세대 사회학과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또 하나의 문화>* 동인으로 활동했고 대안교육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1999년 연세대와 서울시의 협력 사업의 하나로 ‘하자센터’를 만들 때 주도적 역할을 했다.
2013년부터는 서울 도심에 ‘마을살이’가 가능한 인프라를 만들어 내기 위한 자문 활동을 하는 등 인문사회학자이자 실천적 지식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 또 하나의 문화 : 평등과 평화, 자율과 공존의 가치를 실현하며 남녀가 진정한 벗으로서 협력할 수 있는 사회를 지향하는 대안적 문화를 사회에 뿌리내림으로써 개방되고 유연한 사회로의 변화를 모색하는 단체. 1984년 설립 이후 출판과 세미나, 어린이 캠프 등 다양한 활동의 장을 열어왔다.

어디서 들은 이야기다. 공간을 가진 사회단체 혹은 공공센터에서 자주 나오는 얘기 가운데 “우리도 하자센터 같은 걸 만들어보자”는 의견이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 돌아오는 대답이 재미있단다. “우리한텐 조한혜정이 없잖아.”
조한혜정은 하자센터의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독보적 역할을 했다. 많은 대안학교와 직업학교가 탄생하고 있고 하자센터를 ‘복제’하고 있지만, 단지 겉모습만 베껴 답습해서는 만들기 쉽지 않은 독특한 가치관과 특별한 운영방식이 그간의 세월에 녹아있다. 하지만 하자센터는 공공기관으로서 스스로를 오픈하고 ‘복제’해 가길 염원하는 ‘공공성’을 지향한다.
정식 명칭은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그러나 별명인 하자센터로 더 유명한 그곳에서 설립자인 조한혜정 명예 교수를 만났다.



하자센터는 어떻게 시작한 겁니까?


IMF가 계기가 되었지요. IMF 당시 나도 충격을 받아서 안 가던 관에 자문을 하러 다니게 되었어요. 김대중 정권이 시작되던 때였는데, 문화관광부의 ‘21세기 문화정책위원회’와 ‘청소년정책자문위원회’ 같은 곳에 자문을 했습니다. 서울시 실업대책위원회에서는 여성과 청소년 정책을 세우는 일에 관여하기도 했구요.
그 때 청년과 청소년들을 위한 특단의 시공간이 필요하다는 내 주장을 수용해 시에서 그러지 않아도 골칫거리였던 오래된 시설을 전환해 청소년 특화 시설로 만들기로 했어요. 옆에 있는 청소년 성문화센터, 남산의 청소년 미지센터, 그리고 하자센터가 그곳이지요. 공무원들이 좀처럼 창의적인 일을 안 하는데, 그때는 나라가 위기였잖아요? 여성‧청소년 대책위원장으로서 “앞으로 영화와 인터넷 등, 문화 산업이 나라경제를 살릴 것”이라며 “대량 생산적 교육을 벗어나 다품종 소량생산체계에 맞는 교육을 시켜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지요. <쥬라기 공원>으로 스필버그 한 사람이 벌어들인 돈이 현대자동차 1년 수출액과 맞먹는다는 이야기가 나돌던 때여서 그것이 먹혔던 겁니다.
실제로 학교가 몸에 맞지 않는다며, 학생들이 수업시간에 다들 자고 또 탈학교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있었어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대안학교들을 둘러보기 시작한 것이지요. 일본 도쿄의 슈레*, 핀란드 시니넨 베르스타스*, 미국 MIT 미디어 랩이나 스탠포드 대학생들이 마련한 청소년 작업장 등을 둘러보고 한국에 맞는 청소년 센터는 어떤 것일지 여러 전문가와 청년 활동가들과 함께 연구도 하고 실험적 캠프도 벌였어요. 대대적으로 신문을 통해 여론화 작업도 펼쳤구요. 그렇게 해서 만들어 진 게 바로 하자센터입니다.
<서태지와 아이들> 밴드가 <교실 이데아>같은 노래를 불러서 돌풍을 일으키고, 영화감독이나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청소년들이 많았던 때였어요. 하자센터를 영상, 디자인, 대중음악, 웹, 그리고 인문학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만들었는데, 그 때 작업하러 온 학생들이 아주 많았고 그 학생들 중에서 학교를 때려치우고 이곳에 죽치고 작업을 하겠다는 학생들이 생겨서 자연스럽게 대안학교도 생겼지요.
‘하자 작업장 학교’는 그래서 생긴 겁니다. 여기서 하고 싶은 작업을 하다가 검정고시를 보거나 대학을 가기도 하고, 혹은 대학 안 가고 디자이너가 되기도 하고. 영국이나 미국 등의 영화학교나 디자인 학교에 자기가 번 돈으로 가서 학위를 받고 온 친구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디자이너로 자리를 잡은 사람도 있고, 영화감독이 된 이들도 꽤 됩니다.



왜‘하자’지요?


‘하고 싶은 거 하자’ ‘스스로 하자’가 이곳 모토라서 별명이 ‘하자센터’가 된 겁니다. 하자를 만든 이들이 모여서 토론하다가 나온 예명, 별명이지요. 모든 게 자기의 동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고, 하고 싶은 개인들이 모여서 작당을 하고 뜻을 모아 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7가지 약속의 첫 번째 약속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하기 싫은 일도 할게요”입니다. 화장실에 붙어 있는데 보셨지요? 한 십여 년 동안, 스스로 하고 싶은 게 있는 아이들이 많이 와서 들락거리며 다양한 문화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2000년대 중반부턴 하고 싶은 게 있는 아이들이 점점 줄어드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IMF 후 대안교육에 대한 열망이 커졌을 때, 정부에서 바우처(기존 학교를 다니지 않고 대안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이들에게 학비를 개별적으로 주어서 대안학교를 만들게 하는 지원 제도)를 줘서 제대로 그런 변화의 방향을 지원했더라면. 그래서 전체 학교 중 5% 정도라도 대안학교로 전환을 했더라면, 현재 교육의 체질이 바뀌었을 겁니다. 그런데 당시 정부는 대안학교가 많아지면 기존 학교가 붕괴될 것 같으니까 바우처를 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대안학교를 만들려면 부모들이 돈을 다 내서 공간도 마련해야 했고 운영비도 내야 하니까 커지지 못한 것이지요. 건물만이라도 지원해줬다면 좋은 교육 내용이 나올 수 있었을 텐데, 나라에서 그것도 안 해줬지요. 대안학교 중 가장 성공적이라고 하는 성미산 학교마저도 빚을 많이 졌고 교사들 월급도 아주 적었어요. 그때 잠시 위기를 푸는 과정에 교장 노릇을 했는데, 부모들이 감당하지 않아도 될 것들을 너무 많이 감당하는 걸 봤지요.
이른바 엘리트들이 교육에 불만이 많으면 대안학교를 만드는 데 주력하면서 법도 바꾸고 해야 하는데, 그러지 않고 자기 아이들을 외국으로 보낸 것이 우리 교육이 바뀌지 않은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대안학교를 통한 교육개혁의 기회를 놓친 셈이지요. 그 이후 사교육 시장이 극성을 부리면서 ‘매니저 맘’이 등장하고, “아이 성적은 엄마 성적”이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요. 한국의 제도교육은 더욱 한줄 세우기 입시 교육으로 치닫게 되었구요.
아이들은 기센 부모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고, 그래서 ‘하고 싶은 것이 없어진 존재’가 되어가고 있어요. 경제 성장기에 자란 부모 세대와 달리 이 세대는 어릴 때 IMF 위기를 겪으며 세상이 좋아진다기보다 나빠진다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자랐어요. 기존 학교만이 아니라 하자센터에도 꿈이 없는 아이들이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아이들의 무기력화가 큰 문제이고, 어떻게 아이들을 재활력화 해낼지가 사실상 청소년들과 지내는 담임이나 판돌들의 주요 고민이 된 것이지요.


*도쿄 슈레 : 이지메가 사회적인 현상으로 떠오르자 등교거부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대안학교. 1985년에 도쿄 하치오지 지역에 설립된 뒤 30년 간 등교거부 학생들의 배움터이자 놀이터 역할을 해왔고 홈스쿨링 신문도 만들었다.
*시니넨 베르스타스 : 핀란드 헬싱키의 직업체험 겸 문화작업장.


지금 하자센터는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까?


2010년쯤부터 하자센터에서는 졸업생과 문화작업장들이 중심이 된 노리단, 트래블러스 맵 등 사회적 기업들이 생겨났어요. 하자센터에서는 경제 체제가 바뀌어야 하고, 특히 사회적 경제 영역이 커져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런 활동을 지원하고 사회적 기업을 인큐베이팅 했던 것이지요. 그 사회적 기업들이 대안학교를 만들었는데, 로드 스꼴라, 영셰프스쿨, 유자쌀롱 등이 그때 만들어진 작은 대안학교입니다.
가령 ‘로드 스꼴라’는 여행사에서 만든 학교예요. 신입생을 한 이십명만 받는데 그 학년에 예를 들어 베트남에 간다고 하면 1년을 그 나라의 모든 것을 집중적으로 공부합니다. 경제와 역사와 사회, 그리고 말도 조금 배우구요. 사전 국내 여행도 많이 합니다. 그렇게 여러 가지 필요한 공부를 하면서 실제 여행을 계획하고, 표 사는 것부터 현지 컨텍까지 직접 하면서 일정을 정하고 현지와 연락하지요. 철저하게 준비한 뒤 한 달 반 정도 여행을 합니다. 다녀오면 그 여행에 대해 분석하고 배운 것들을 나누면서 영상 만들어 발표하고 책을 내는 등 마무리 작업을 합니다. 졸업 후에는 대학 진학을 하거나, 여행사에 취직하거나, 여행을 더 하거나, 외국 교환학생으로 가는 등 다양한 길을 선택하지요.
‘영셰프스쿨’도 사회적 기업 오가니제이션요리(일명 ‘오요리’)에서 만든 학교이고, ‘유유자적살롱’(일명 ‘유자쌀롱’)도 사회적 기업에서 만들었어요. ‘유자쌀롱’은 무중력청소년이라고 해서 무기력한 청소년들이 하자에 와서 그냥 무기력하게 있고 싶으면 그렇게 있다가 충분히 쉰 뒤 슬슬 음악을 하는 그런 학교입니다.
최근에는 ‘오디세이 학교’라고 교육청에서 혁신교육의 일환으로 만든 학교도 하자센터에 들어와 있습니다. 현재 네 개의 실험학교가 진행 중인데 그 중 하나이지요. 고교 1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전환 학년제 학교로, 하자센터에 1년 동안 머물면서 아주 다른 배움을 경험하게 됩니다. 작년에 처음으로 입주해서 하자센터에서 모두 도우면서 신나게 한 차례 갔었구요. 아이들과 담임들 모두 만족스러워했어요. 올해 두 번째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으로 배우는 것을 경험하고, 다시 기존 학교에 돌아가도 관찰하는 힘을 키웠으니 잘 해내리라 생각합니다. 좀 다른 길을 찾아 떠나는 학생들은 그런 대로 제대로 길 찾기를 한 것이구요. 이런 실험적 교육에 많이들 참여하면 좋은데, 4차 산업 혁명 운운하면서도 이런 시도가 확대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습니다.
하자센터에는 기존 학교의 아이들이 예약해서 직업 체험을 하러 오기도 합니다. 또 4월부터는 교육청의 ‘학부모 대학’ 중 하나로, 하자캠퍼스에서 10주 간 새로운 배움의 장이 열릴 것이구요. 이른바 평생학습의 장인 것이지요. 어린 아이들이 동네 장터도 열고 젖먹이 어머니들이 모여서 모임을 하기도 합니다. 요즘은 이렇게 다양한 연령대에 걸친 만남과 학습이 하자센터 안에 있는 ‘허브’라는 곳에서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정과 환대의 시공간이라고 부르지요.


하는 일이 아주 다양한데, 스태프는 몇 분이나 됩니까?


모두 39명이고, 그 중 풀타임 인원이 29명입니다. 이곳은 졸업하면 그만인 곳이 아니라, 사실 뜻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곳이라 떠나도 수시로 오고, 또 학생이 판돌이 되기도 하고 수시로 자신들이 원하는 활동을 벌일 수도 있는 마을 같은 것이지요. 저도 가장 오래된 마을 주민으로, 이곳에 자주 와서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을 돕고 있어요. 그냥 장난처럼 ‘촌장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마을의 어른이라는 의미로 그렇게들 부릅니다. 검도를 가르쳐주시는 박홍이 연세대 물리학과 명예교수, 여성재단 조형 이화여대 명예교수, 천호균 쌈지 사장님 등 하자마을 연례행사에 와서 자문과 함께 덕담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한때는 대안학교, 대안교육이 큰 흐름을 만들기도 했는데, 요즘은 어떻습니까?


대안교육은 크게 두 가지 흐름이 있어요. 대안학교를 따로 운영하자는 쪽과 공립학교를 개혁하자는 혁신학교파가 있습니다.
일본의 사토 마나부 선생은 혁신학교를 이야기하면서 그 학교는 아이들이 사는 집과 비슷할 것, 그리고 학습의 방법을 혁신할 것을 주장했지요. 교수 방법은 배움의 공동체라는 방법인데 4명의 학생을 묶어 토론하고 자발적으로 공부하게 만드는 것이 기본입니다. 교사는 초반에 5분 정도 아주 흥미로운 문제를 내는 사람이지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니고 학생들이 충분히 스스로 생각하고 서로 협력하면서 배우게 하는 원리입니다. 예를 들어 영어 문제를 선생님이 냈는데, A라는 아이는 외국도 다녀오고 답을 알아요. 그런데 그 아이는 수줍어서 말을 잘 못하는 아이이지요. B라는 아이는 발표하고 싶어 죽겠는데 잘 모르니까 동동거린단 말이에요. 그러면 B를 보다 못한 A가 B에게 가르쳐주게 되거든요. 그러면서 그 수줍은 아이는 사회성을 키우게 되지요. 사람이 본래 가진 남을 돕고자 하는 마음에서 공부도 시작하고 모든 일이 시작되지요. 사실 B의 무지보다도, 말하지 않으려는 A의 마음이 더 큰 병일 수 있는데, 배움의 공동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치료되는 것입니다. 사토 마나부 선생의 배움의 공동체를 우리나라 이우학교가 받아들여서 실행하고 있어요.
요즘 사회가 양극화되어 문제다, 좌파가 문제다, 극우가 문제다 하는데, 저는 중도파가 제일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를 지탱하는 양대 축이 있잖아요? 재산권 신수설과 교육 신수설. “내 아파트 내가 짓겠다는데 왜 말이 많냐?”, “내 재산에 손대지 마라” 이렇게 말하면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잖아요.
입시로 애들을 한 줄로 세우면 모든 것이 되는 것처럼 믿는 것이 학력신수설입니다. 중도파들은 양 손에 이 두 개를 든 채 기회를 보고 있어요. 이들이 아니라면 잘못된 입시제도가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 버티겠어요?


하자센터와 함께 선생님을 이야기할 때 <또하나의 문화>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또하나의 문화>가 계간지였던가요?


아니, 무크지였지요. 의무적으로 꼭 내야 하는 게 싫어서, 준비되면 내는 걸로 1년에 1~2권 정도 나왔습니다. <또하나의문화>(이하 <또문>)의 첫 책이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였어요. 부모가 평등하게 서로 협력하고 자기 의견을 내면서 아이를 키워야 아이도 자유롭게 잘 자란다는 내용이었지요. 그 이후 대안학교, 공동육아 등을 거론했습니다. 그 당시는 군부 독재 말기라, 조직화해서 군사정권과 싸워야 하고 그것에 힘을 집결해야 하는데 <또문>은 너무 개인이라거나 문화를 이야기한다고 개량주의적이라고 욕을 먹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숙한 시민은 개인에서 시작하고, 결국 그 길로 가야한다는 걸 믿고 있기 때문에 그런 비판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타도 운동은 잘 하시는 분들이 하시고, 우리는 그 운동에 동조하지만 ‘개인의 삶에서 시작하는 시민적 공공성을 만들어내는’ 운동을 해 나갔던 것입니다.
지금은 성폭력이 페미니즘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지만 저희 때는 취직문제와 시집살이가 중요 이슈였어요. <또문>의 두 번째 책 <열린사회, 자율적 여성>에서 그 부분을 다뤘지요.
당시만 해도 여자는 결혼하면 퇴사하는 문화였고, 혹시 맞벌이를 하더라도 여자가 시집 눈치를 보면서 전전긍긍했어요. 살림을 도맡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래서 저희는 호주제 폐지, 여성 채용 시 결혼각서 폐지, 남녀평등을 제도적으로 이끌어내려 노력했습니다. 91년에 나온 <새로 쓰는 결혼 이야기>, <새로 쓰는 성 이야기>는 꽤 많이 팔려서 저희 기준에선 돈도 좀 벌었어요.(웃음)


성이 ‘조한’, 복수성인데, 선생님이 거의 최초 아닌가요?


복수성 쓰기는 의사들의 여아 낙태가 심각하다는 문제를 계기로 시작되었어요. 당시 대구에서 세 번째 아이의 70%가 남자 아이라는 통계가 나올 정도였으니까요. 그때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에 동참했어요.


복수성 쓰기를 처음 접했을 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선생님 따라 당시 제가 근무하던 <한겨레> 편집국 기자들이 복수성을 많이 썼습니다. 특히 여기자들이요.


남자 기자들도 쓰시던데요?(웃음) 근데 요즘은 이렇게 쓰면 개페미라고 하더라구요.(웃음)




어제 쓰신 칼럼에 ‘시민적 국민’이라는 개념을 쓰셨지요? ‘시민적 국민’, 무슨 의미인가요?


그간 우리는 여러모로 국가주의적으로 동원된 국민이었잖아요? 마치 아픈 아버지가 살아만 있어주면 좋다는 것처럼…. 주권을 찾은 것만으로 족하고, 국가가 국민을 위해 있다기보다 국가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만. 그러면서 또 한 번 국가를 믿지 못하는 양면성이 있었지요.
저희 외가가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을 한 집안인데, 나라에서 해주는 거 하나 없어도 나라에 대한 사랑이 끔찍하시거든요. 그 후 세대는 나라의 경제발전에 발 벗고 동원이 되었지요. 뜻이 서로 맞았다고 할 수도 있구요. 영화 <국제시장>이 그 세대는 아주 잘 그려주고 있어요. 애국가가 나오면 모두 멈추어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국민이지요. 어릴 때부터 태극기 흔들고 국가에 동원되면서 그렇게 정신없이 굴러온 겁니다.
경제가 좋아지고 교육도 많이 받고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자기 의견을 내며 사는 시민이 많아진 건 1990년대부터라고 생각합니다. 이른바 소비사회와 일상의 민주화가 주제였던 시대이지요. 내 삶은 내가 결정한다는 게 기본이 되고, 개인이 중심이 되어 스스로 각성해 협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 겁니다. 그렇게 자신으로부터 삶을 만들어가고 국가적 삶까지 연결하는 사람을 저는 ‘시민적 국민’이라고 부릅니다. 1990년대가 시민적 국민들이 등장해서 사회를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만들어내는 시기였지요.
그렇게 가던 중 IMF 구제 금융 소식이 전해지고 국가 경제가 파탄 나게 됩니다. 다시 모두가 긴장하고 불안해져, 개별적 삶만 챙기게 되고 정부는 또 정부대로 독단적으로 가며 결국 제대로 시민적 힘을 키울 기회를 놓친 겁니다. 다시 가족으로 뭉치고 개인이 들어설 자리가 협소해지지요. 청년들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좀 자유스럽게 살려고 해도, 집도 없다 보니 부모 말 들어야 하고… 결국 돈 있는 부모 눈치를 보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반면 부모의 도움이 없는 청년들은 생존이 어렵게 되어 각자도생하게 되지요. 개개인이 쫓기는 듯 피로한 삶에 매몰되어 사회를 일궈가는 존재로서의 자기를 만들어가거나 발휘하지 못하게 됐지요.
<고양이를 부탁해>, <봄날은 간다>, <처녀들의 저녁식사> 같은 영화가 나왔을 때가 바로 여자들이 ‘더 이상 못 참겠다’, ‘이 후진 나라를 떠나겠다’ 하던 시기였지요. 우리 사회가 제대로 가는 사회였다면 그때 바로 대안학교들이 우후죽순 생기고, 평등한 연애와 결혼을 하는 남녀가 늘어나고 경제성장 제일주의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을 겁니다.
여성들과 청소년들이 내 삶을 내가 살겠다고 나섰는데 사회가 열리지 않은 겁니다. 그 여성들이 부모가 되어 대안학교를 만들고, 공동육아를 시도 했지만 사회변화를 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고 할까요?
시민은 창의적으로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풀면서 사회를 바꾸어내고 나라를 성숙하게 만들어가는 주체입니다. 그런데 입시교육이 변하지 않고 중앙정치 권력이 너무 막강하면서 시민적 영역을 열어가지 못한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열망을 안고 있었기에 이번에 광화문 광장의 사건이 터진 것이지요. 모두들 광장으로 나와 “이게 나라냐?”면서 문제제기를 한 것이고, 헌정질서를 지키지 않는 대통령을 탄핵함으로서 이제야 명실공이 근대국가를 만들어낸 것이지요. 촛불혁명으로 시민적 국민이 본격적으로 탄생한 시대가 열리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그러나 반대로 태극기 집회도 극렬하지 않습니까? 태극기 집회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곳에 나온 분들은 전쟁 등의 트라우마를 겪은 분들로서 그 시대의 틀 안에서 발언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을 이용해서 어떻게든 정치권력을 잡아보려는 정치공학적 세력이 실은 가장 큰 문제이지만, 여기서는 집회에 나온 자발적 참가자들을 생각해보도록 하지요. 국민의 분열이라는 문제를 풀어야 하니까요. 실제로 집안에서도 세대 간 아주 다른 경험에서 나오는 갈등이 매우 심각하지 않습니까? 시민으로서 광화문 집회에 가지만 인류학자로서 태극기 집회도 관심 있게 보고 있는데요. 가보면 온통 군가를 틀어놓더군요. 군복 입은 이들이 많았고 간호 장교복을 입은 여성들도 모여 있었어요. 돈을 많이 번 보수적인 부자들도 변화를 두려워하면서 많이들 나온 것 같고, 어떤 할머니에게 어떻게 나오셨는지 물으니 “집에 있으면 몸만 아픈데 이렇게 광장에 나오니 너무 좋다. 자식들 있어도 말 한마디 안 붙여준다.”고 서운해 하시더군요. 사실 저희도 촛불집회 가서 에너지를 얻잖아요? 만나고 싶은 사람 만나고, 맛있는 거 먹고. 태극기 집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태극기 집회의 핵심은 노년 세대 남자들인데 해방 후 월남한 분들, 그리고 6.25와 월남전에 참전했던 분들이 중심인 것 같습니다. 이분들은 자신들이 나라를 지켰다고 생각하고 바로 그 자부심으로 살고 있는데, 자녀세대는 굳이 그것을 인정 하고 싶지 않는 것이지요. 사실 모두가 행복하면 서로 고마워하겠지만 지금 한국 상황은 그렇지가 않아요. 승자 독식 사회가 되면서 돈 많은 부모세대가 돈을 쥐고 있는 셈이고 그 아래 세대는 직장도 제대로 없는 상황이잖아요? 돈 많은 부모에게 자식들은 잘 하지만 마음으로는 존경을 하지 않는 것이고, 부모 도움 없이 사는 청년들은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하는 것이 납득이 되지 않고 분노가 쌓이게 되지요. 그간의 근대화가 그렇게 공평한 과정이 아니어서 사실상 모든 국민들이 화가 나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촛불이 제대로 시민 혁명을 마무리 하려면 그 분들을 설득해야 해요. <국제시장>이라는 영화를 두고 세대 갈등이 뚜렷한데, 그걸 나쁘게 볼 게 아니라 소통의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적폐청산이라는 말을, 돈을 가진 노년 세대는 자기 재산을 뺏긴다는 말로 듣고 있는 겁니다. 기본적으로 우리 모두가 일정하게 소외와 박탈감과 공포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간 전쟁의 경험, 배고픔의 경험을 하신 분들에게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은 거예요. “박정희가 잘한 게 아니라 당신들이 잘 한 거”라고 이야기해줘야 돼요. 그런 언어가 나와야 되는데 그러지 못한 겁니다. 다들 너무 바쁘고 자기 세대 언어 만들기에 급급하거나 혼자 살기에 급급하다보니 사회 자체가 깨진 것이지요.



교육 전문가이시니까, 다소 근본적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배움이나 교육으로 바뀔 수 있나요?


당연하지요. 그 점에 확신이 없는 게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 입니다. 사회는 도구적 합리성과 소통 합리성의 영역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나라는 재력과 권력, 재산, 졸업장 등 도구적인 것에 지나치게 치중하는 불균형한 사회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이 “교육이 뭘 바꿀 수 있냐?”며 자포자기해요. 소통적 합리성에 대한 감각조차 없는 것이지요. 무기력한 소통주의라고 할까…. 소통을 강조했던 <또문>이 일상적이고 지엽적인 문제만 다룬다고 비난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도라는 것도 결국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을 하면서 바꾸는 거예요. 저는 재활력화(Revitalize)라는 단어를 쓰는데, 사회변화란 결국 개개인 사람들이 재활력화하려 노력하는 와중에 이루어지는 겁니다.
하자센터만 봐도, 학교에 못 있겠다고 아이들이 튀어나온 거지요. 그 아이들이 두발자율화운동도 하고 온라인에서 학교 고발하면서 자기 삶을 활기 있는 삶으로 만들어보려고 한 거구요. 저는 그런 학생들을 보면서 하자센터 같은 곳이 필요하다고 제안을 한 것이고, 공무원이나 대학에서도 그 점을 감지했기에 결국 새로운 공간이 생긴 겁니다. 변화를 원하는 성원들의 목소리가 모여서 제도를 쉽게 바꿔내면 그게 바로 좋은 사회인 것이지요.
사람을 만나는 것, 사람들의 욕구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학습자의 가장 중요한 능력 아닌가요? 사람의 욕망을 보고, 사람이 변화하는 걸 보는 것이지요. 사회적 존재가 되는 사람을 키우는 거, 그게 교육입니다. 민주주의적 시민이기도 하고, 자기가 먹고 살 것을 장만하는 생산적 노동자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협력적 존재이자 자기 목소리를 멋지게 낼 줄 아는 예술적 존재이기도 하지요. 그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는 기존 관습에 묶여서는 안 됩니다. ‘네 삶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너의 길을 네가 찾아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 교육이고 지금과 같은 난세에는 특히 그런 것이지요.



저서가 많으십니다. 요즘은 어떤 책을 쓰고 계십니까?


손자와 놀고 요가를 하며, 그런 유유자적 하는 가운데 책을 낼 나이일 텐데, 그게 잘 안 되네요. 시국이 시국인지라.
지금은 국민과 시민과 난민에 대한 책을 마무리하고 있어요. 국민국가 단위에서 산업화, 경제성장을 했고, 세계화하면서 정보사회, 소비사회, 전 지구적 사회를 경험했잖아요. 이 근대 국가가 기후변화, 핵 문제, 테러, 그리고 인간자원고갈 문제로 감당 못할 리스크를 안고 있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샤워를 하고, 수세식 변소를 쓰고, 먼 데서 온 음식을 먹으면서 글로벌 산업구조 속에 들어가는데 이미 지속가능한 체제가 아니거든요.
1~2차 세계대전 때 유럽도 중산층이 많아져 소비가 늘어나고 개개인이 돈독에 오르지요. 그럴 때 불경기가 오고 실업자가 늘자 불안해진 가운데 독일에서 나치가 등장합니다. 지금 상황과 실은 매우 비슷한 데가 있어요. 미국도 백인 남성들의 백래쉬(backlash)가 시작되었고, 그 분노를 현실적으로 푸는 게 아니라 감정적으로 선전선동하면서 적개심을 부추기고 있잖아요? 한국은 이중 위험사회라고, OECD 지표를 봐도 매우 불행한 일들이 벌어지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어요. 4대강을 막무가내로 밀어부치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릅니다. 사실상 질서가 깨져버리고 사람도 제대로 키우지 못하게 된 것이지요.
갑자기 개성공단을 닫아버린다거나 국회 상정도 없이 일본군 위안부 관련 협정을 맺어 버린다거나 국정교과서를 밀어붙인다거나….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지요. 지난 몇 년 사이 우리나라의 도덕성은 무너지고, 도저히 이 나라는 미래가 없을 것 같다면서 해외로 떠난 청년들도 꽤 많아졌어요. 일종의 자발적 난민인 셈입니다. 그간 매우 합리적인 교육을 받고 그렇게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시스템이었던 겁니다.
한국의 경우, 특히 현재의 입시 교육체제를 바꾸지 않으면, 결국 일도 못하고 스스로 삶을 살아가지도 못하는 부담스러운 국민만 양산하게 됩니다. <핸드메이드>, <설국열차> 같은 영화에 나오는 사회에 가까워지면서 결국 사람들을 쓰레기처럼 취급하는 상태로 가는 것이지요. 난민화된다는 게 그런 겁니다.
다행히 탄핵이 성공했고, 우리는 이 땅에서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보게 된 것입니다. 떠난 사람들도 다른 나라에 가보면 극우파가 난리를 치고, 인종차별이 심하니까 어디나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될 테고요. 우리는 국민에서 시민이 될까 말까 하다가 난민이 되려던 상황에서 다행히 탄핵을 둘러싼 시민들의 움직임을 통해 대단한 학습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제 근대적 제도화를 해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그렇다면 상당히 근원적인 해법이 필요한 것 아닌가요?


그래서 저는 요즘 해법으로 마을학교를 이야기합니다. 원주나 강릉의 ‘날자 방과 후 학교’, 또는 성미산마을 같은 곳들을 가보면 아주 잘 하고 있지요. 거기 가면 아이들에게 “너넨 대단한 사람 될 필요 없다, 마을에서 계속 사는 방법을 연구하자” 이렇게 말하는 어른들이 많고, 자기 자식만이 아니라 다른 아이들의 미래도 함께 걱정합니다. 특히 공기 좋고 땅 있는 곳에서 어른들은 함께 아이들을 키우고, 심부름도 시키고, 나중에는 서로에게 삼촌이 되어주며 살자고 말합니다. 방과 후나 방학 때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영하고, 아주 잘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마을의 부모들이 대부분 교사인데 그 직업적 안정성이 없어진다면 과연 마을학교를 확산할 수 있겠나 싶지만 어쨌든 운동이 시작된 것이지요.
나의 아이가 아니라 우리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가 고민하면 좋겠습니다.
제가 얘기하는 마을이란 옛날식 마을이 아니라, 서울의 ‘성미산 마을’이나 인천의 ‘우리동네 사람들’ 또는 일본의 애즈원커뮤니티*처럼 기본적으로 각자의 집에서 살면서도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에 상부상조하는 네트워크가 생기는 형태를 말해요. 육아도 같이 하고 노인도 같이 돌보고 사회적 경제도 일으키고, 서로 돕는 삶의 형태이지요.
하자에서도 신관인 ‘허브’에서는 뜨개질하는 아줌마, 젖먹이 아기들도 오고 어린이들이 길고양이를 돌보고 수시로 와서 놀고 서로 돕고, 청소년들이 거기 온 어른들과 이야기하면서 멘토를 찾게 되기도 하고 또 어린 동생 같은 동네 아이들을 자연스럽게 돌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마을로 나아가는 것이 희망이 아닐까 합니다.


*애즈원 커뮤니티 : 일본 미에카현 스즈키시에 있는 공동체. 2001년 만들어져 현재 100가구 정도가 함께 살고 있다. 공동체를 위한 개인이 아니라 개인을 위한 공동체를 지향한다. ‘as one’이라는 이름은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의 한 구절에서 따왔다.

조한혜정 교수는 “시민은 자기로부터 시작해서 합리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길게 보면 “우리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느냐 대해 의견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의 관심은 여성에서 청소년을 거쳐 마을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모두 자신이 경험해보고 선택하면서 활동해온 궤적이다.
조한혜정 교수는 집단주의적 사고와 정서가 강한 한국에서 때로는 개량주의적이라는, 때로는 부르조아적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비난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개인을 중심에 놓고,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한눈 팔지 않고 꾸준히 해 온 그의 삶의 궤적이 이날따라 귀하게 다가온다.



▲ 입촌식의 열기가 아직 남아있는 하자센터의 본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하자센터 학습생태계팀의 소영, <다들>의 이유정 작가, 하자센터 촌장 ‘조한’, 전아림 주임, 김영철 원장, 김혜영 팀장


정리/김영철 서울시평생교육진흥원 원장, 이유정 <다들>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