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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삶과 사회를 창조하고 싶다

김찬호(성공회대 교수)

2017년 2월, 이월상품이 넘쳐납니다. 2월은 봄을 기다리며 작년에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 넘겨 오는 시즌입니다.
2월, 이월…. 작년의 청년문제가 올해도 이월되고 있습니다.
2월이 지나면 청년의 봄날은 올 수 있을까요?
<다들>은 그 어려운 질문의 답을 김찬호 교수님 글로 대신해봅니다.

김찬호 (성공회대 교수)

청년 정신, 청춘예찬, 호연지기(浩然之氣)…. 한 때 젊은이들을 묘사하는 말들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혀 다른 이미지로 바뀌었다. ‘청년 백수’ ‘신용 불량자’ N포 세대…. 지금 한국의 젊은이들은 변화를 주도하고 미래를 개척하기는커녕, 당장의 생활을 이어가는 데 막막한 실정이다. 소비의 주체로만이 아니라 생산의 주체로 청년들이 당당하게 설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 ‘젊음’이 욕망의 대상으로 소진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문화적 창조성의 원천으로 재생되는 힘은 어떻게 형성될 수 있는가.


근본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에서 볼 때 청년들의 인생에 활로를 열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달라져야 한다. 먼저 사회 진출의 경로가 보다 완만해져야 한다. 즉 지금처럼 몇백 대 일의 가파른 경쟁을 뚫고 겨우 말단직 하나를 얻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완충지대가 있어서 사회 진출의 변속장치 역할을 해 주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역사회에는 다양한 일거리들이 기다리고 있다. 노인 복지와 육아, 자원 재활용, 안전한 생활공간의 확보, 쾌적한 삶의 디자인 등에 관련된 과제들이 그것이다. 물론 이 영역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당장 일정 규모의 고용이 창출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것은 우선 지방 정부 차원의 몫이다. 당장 서비스 시장으로 형성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거리들을 발굴해 장기적인 일자리로 정착시켜 가야 한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일거리와 일자리를 긴 안목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점이다. 청년 실업의 대책으로 시행되는 인턴제도가 젊은이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도 임시변통으로 급조된 일자리기 때문이다. 땜질식의 대응이 아니라 정말로 필요한 일거리를 젊은이들이 수행하면서 그를 통해 일의 의미와 즐거움을 체험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 그러려면 시행하는 쪽과 참가자들이 그 의미를 정확하게 공유하면서 학습을 도모해야 한다. 자신이 지니고 있거나 개발하고자 하는 직업적 능력이 현실에 어떻게 기여하는지를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일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사회적 지능과 소통능력을 배양하는 과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인턴십을 통해 젊은이들의 도전 의욕을 북돋우면서 그 에너지를 사회의 혁신으로 이어가려는 시도로서 일본의 ETIC(Entrepreneurial Training for Innovative Communities)이라는 NPO(Non-Profit Organization, 민간 비영리 단체)가 주목을 받고 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 프로그램에서 인턴십을 제공하는 기관은 ‘사회에 새로운 가치를 제안하는 벤처 기업이나 NPO’로 제한된다. 참가하는 인턴사원들은 직속의 상사인 경영자로부터 비즈니스 전체의 흐름을 보는 안목, 리더십이나 경영 노하우 등에 대해 배울 수 있다. 인턴은 단순한 견습이 아니라 정사원과 마찬가지로 일정한 부분의 책임을 지고 일을 해나가게 된다. 인턴이 지니고 있는 가능성과 잠재력을 그만큼 믿기에 그런 직무와 역할을 부여할 수 있겠지만, 맡겨진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전속 코디네이터가 일 대 일로 따라붙어 코칭과 상담을 해 주기에 결정적인 실수를 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인턴들의 능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외부 강사를 초빙해 세미나도 개최한다.

ETIC가 시행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에서 무엇보다 돋보이는 특징은 인턴들 사이의 횡적 종적 연계를 도모한다는 점이다. 여러 기업이나 기관에서 활동하는 동기생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여, 그룹별로 나뉘어 ‘목표 설정과 과제 해결’에 관한 워크숍이나 강연회를 연다. 인턴사원들은 이 교류의 장을 통해 새로운 동료를 만나고 공통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맺을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인턴을 경험하고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인턴십 선배들과 인연을 맺는 기회도 제공한다. 이렇듯 기업가 정신과 가치 창조력을 지니고 있는 리더들을 지원하면서 그들 사이의 혁신적인 커뮤니티를 키우는 것은 젊은이들이 사회에 입문하고 활약할 수 있는 ‘사회 자본’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젊은이들이 사회로 진출하는 과정을 그 개개인의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디자인한다는 점이다. 그런 발상으로 좀 더 섬세하게 기획해야 할 일들이 많다. 인턴십 프로그램만이 아니다. 예를 들어 청소년과 대학생들이 봉사 학점을 따기 위해 여러 기관으로 파견되는데, 아직도 의미 없는 일을 시키는 경우가 많다. 시간 낭비의 문제만이 아니다. 자신의 쓸모가 그런 수준에서밖에 인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자괴감에 빠져든다. 대충대충 무늬만 만들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세상에 대해 냉소주의가 자라난다. 자원봉사란 대가 없이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뭔가 공공선에 기여하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보람을 얻는 행위다. 그것은 젊은이들이 사회를 발견하고 공적인 자아를 각성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20대 청년들이 종사하는 공익근무도 그런 관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성장 과정에서 처음 제대로 수행해 보는 사회적인 역할인데 젊은이들은 자부심을 느끼지 못한다. 군 복무 대체로 근무하는 이들의 조직이라서 그런지 군대식의 위계 서열이 엄격하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공무원들이 그들을 아무렇게나 대한다는 이야기도 종종 들려온다. 그래서 공익근무요원들은 말단보다도 더 아래 있는 열외의 직급으로 자리매김한다. 자기 일이 재미있을 리가 만무하다. 아직도 도처에 강하게 남아 있는 관료적 권위주의와 경직된 문화의 관성이 젊은이들의 성장에 그렇듯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공익근무는 청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말 그대로 공공적 존재로 자기를 발견하는 소중한 경험이다. ‘공익’에 봉사하는 일을 통해 프라이드를 얻고, 그 에너지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경로가 다양하게 열려야 한다. 사회의 주역으로 그리고 공공영역의 책임자로서 승인받으며 삶의 근거를 세울 수 있어야 한다. 시장적 이윤을 창출하는 피고용자로서만이 아니라 공동사회의 실제적인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시민으로서 자아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청년실업자의 불행을 줄이기 위해 필요한 또 한 가지 요건은 삶의 고비용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다. 우선 부동산 가격이다. 젊은이들이 사회적으로 자립하는데 이렇게 큰 몫의 돈이 필요한 사회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부동산뿐만이 아니다. 기본적인 생활에 들어가는 돈이 너무 많다. 모든 가치가 돈으로만 환원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능력은 모두 상품화되어 교환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많은 자원들을 시장을 통해서만 확보해야 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서로를 소비적으로 박탈하면서 잠재력을 고갈시켜 간다. 거기에서는 직장이 있는지 없는지,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에 따라 사람의 격(格)이 가늠된다. 청년들은 그러한 구별 짓기의 서글픈 대상으로 범주화된다.

그런데 그러한 현실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당하지 않도록 삶의 철학과 양식을 새롭게 구성하는 것이 청년 실업자들의 몫이다.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틈새를 내어서 상품과 서비스를 최소한으로 구매하면서도 즐겁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사회의 통념에 저항하는 발상과 주인으로서 자기의 삶을 꾸려가겠다는 용기가 필요하다. 지금처럼 돈의 위력이 점점 막강해지는 상황에서 그런 내공을 갖기란 쉽지 않다. 어떻게 하면 '나'를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아무리 참담한 지경에서도 고귀함을 지키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우선 지금의 어려운 처지를 자신의 무능 탓으로 돌리면서 자학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를 위해서 공부가 필요하다. 글로벌한 경제 상황을 파악하고 토건 국가의 구조를 꿰뚫어 보면서 고통과 부조리의 사회적인 맥락을 포착해야 한다.

상품 시장에서는 글로벌한 소비에 대한 환상을, 노동 시장에서는 글로벌한 경쟁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십 대에게 무엇이 필요한가. 범지구적으로 확장되는 세계의 지평을 냉철하게 인식하면서 생활세계를 탄탄하게 구성해가는 힘, 환경에 유연하게 적응하면서 미래를 기획하고 변화를 주도하는 두뇌, 화폐 기준으로 당장 측정되지 않지만 장차 엄청난 가치로 발현될 문화의 씨앗을 발견하는 눈, 기존의 사회적 범주로 환원되지 않는 자기 삶의 고유한 뜻, 그리고 타자의 시선에 매이지 않고 행복한 경험을 다양하게 창조할 수 있는 마음 같은 것이다. 성찰과 수행을 통해 그러한 자질을 습득해가는 과정이 곧 어른이 되는 과정이다. 그것은 우선 젊은이들 스스로 달성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프로젝트만은 아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어릴 때부터 각개전투에 익숙해 있고 사회적 연대(solidarity)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젊은이들끼리 힘을 모으고 키우면서 사회의 기반을 창조해갈 수 있는 커뮤니티가 다양하게 출현해야 한다. 견고해 보이는 세상 곳곳에 숨어있는 틈새들을 찾아내야 한다. 발랄한 상상과 과감한 실행이 가능한 거점을 확보하여 변화의 에너지를 비축해야 한다. 유쾌한 놀이 감각으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면서 저항력을 키울 수 있는 동지들을 모으자.

대기업 정규직이나 전문직에 대한 맹목적 강박, 알바로 적당히 용돈만 벌며 편하게 살자는 룸펜 근성, 그 양극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좌표가 거기에서 모색될 수 있다. 지금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편안하게 머물면서도 자기를 꾸준하게 단련시킬 수 있는 사회적 공간이다. 어수룩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으면서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잠재력을 탐사할 수 있도록 자극과 격려를 주고받는 공동체다. 그 안에서 젊은이들은 외형에 의해 규정당하지 않으면서 고유한 품성을 당당하게 표출하고, 각자의 목표 의식을 공동의 전망 속에서 추구할 수 있다.

이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곳이고 타인들을 기본적으로 믿고 의지할 수 있다는 느낌이 있을 때 젊은이들은 난관을 뚫고 나아갈 수 있다. 성인기로 이행하는 파이프라인이 균열되어 힘겹게 암중모색하고 있지만, 사랑과 정성 가득한 삶의 자양분이 공급된다면 험난한 미로 속에서도 출구를 찾아갈 것이다. 무한경쟁에 시달리며 십 대를 보내고 거기에서 풀려났지만, 그 장래가 첩첩산중이요 현재는 고립무원인 청년들에게, 마음을 내어줄 용의가 기성세대에게 있는가. 그 고단한 발걸음에 손 내밀어 줄 어른은 누구인가.

※이 글은 2008년에 출간한 [생애의 발견]이라는 책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한 것입니다.

김지향

김찬호



-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