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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는 빨갱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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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작성일 2018.11.05 조회수 16 첨부파일

마르크스는 빨갱이인가?

대학연계 시민대학 건국대학교에서 열린 강의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

제4기 시민기자 이혜원

* 필자는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며, 공산주의자도 아님을 미리 밝힙니다.

‘마르크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색깔은 무엇인가. 아마 ‘빨간색’일 것이다. 흔히 마르크스를 배운다거나, 마르크스의 주장에 동의한다는 사람에겐 ‘너 혹시 사상이 그쪽이니?’라는 말을 건넨다. 하지만 마르크스와 빨갱이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개별적 존재이다.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을 위한 세상을 원했다. 그는 본인의 저서 「자본론」에서 세상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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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수업 교재였던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

마르크스가 원했던 세상

마르크스는 생산력1)과 생산관계2)에 따라 상부구조를 설명했다. 피라미드형식으로 보았을 때 상부구조는 제일 위에 위치하고, 물질적 생산 활동인 토대와 기술은 밑바탕에 깔려있다. 이 둘 사이의 괴리가 일어나면 계급투쟁이 발생한다. 계급투쟁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마르크스는 주장했다. 그는 그 시대 사람들의 국가기구, 법률, 사상, 예술, 종교 관념 등이 모두 그 토대(노동자)에서 설명되어야 하고 거꾸로(상부구조로부터 토대로 내려오는 구조) 설명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상부구조에 속하는 사회적 의식과 제도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총체인 토대로부터 나온다는 뜻이다. 즉 상부구조는 개혁되어야 하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마르크스는 토대에 존재하는 노동자들이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하였고 당시 사회에 내재되어 있던 엘리트층들이 세상을 만든다는 생각을 뒤엎고자 하였다. 사람은 정치, 예술, 종교 등에 종사할 수 있기 이전에 우선 먹고 마시고 집을 가지며 옷을 입어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의 생존권에 속하는 아주 기본적인 행위이다. 인간은 욕망이 있다. 지금보다 아름답게 살고자 하는 욕구. 노동자들이 복지를 원한다면 기본적인 생존권만이 아니라 많은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인 생활권까지 요구해야 한다는 게 마르크스의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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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가 말한 상부구조와 하부구조의 관계

마르크스로 본 현재 사회

마르크스가 비판받는 이유는, 그가 인간은 사회적 존재여서 사회와 무관한 개인으로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해 공산주의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완벽한 자본주의 사회로, 특히 공산주의인 북한과 대치 관계에 있어 공산주의와 관련된 소재는 모두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도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그에 따르면, 사회적 존재가 아닌 독립된 개인들은 부르주아 사회를 만들며 부르주아 사회에는 그들만의 리그인 사적소유가 생성된다. 사적소유는 개인적소유와는 다르다. 소유의 목적은 본래 전유에 있는데, 사적소유는 개인적소유와 달리 전유할 수 없으며 본인이 지배하기 위해 가지고 있는 형태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회구조만 봐도 사적소유의 위험성을 알 수 있다. 대기업들은 본인들의 이익을 위해 자본을 소유하며 그 소유의 대를 혈연으로 이어나가 계속 본인들이 더 많은 이익을 취득하고자 한다. 마르크스는 사적소유를 철폐하려고 했다. 사적소유는 노동을 한 사람들이 제대로 본인의 몫을 가져갈 수 없어, 노동한 사람과 이득을 취하는 사람이 다르게 나타난다. 즉 노동 가치가 작동을 안 하여 실업률이 높아지고 비정규직이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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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 수업 중

물론 마르크스의 입장이 무조건 다 옳진 않다. 프랑크푸르트학파3)에 의하면 마르크스의 주장은 실현 가능성이 저조하다. 대중은 수동적이고 원자화되어 있다. 따라서 마르크스가 아무리 대중들에게 단결하고 투쟁하라고 외쳐봤자, 대중은 파편화되어있으므로 쉽게 단결하지 못한다. 이러한 대중들은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저급한 상업문화가 상부구조를 형성하고 있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짙게 끼어있기도 하다. 또한 아무리 하부구조가 바뀐다고 해도 상부구조는 개혁되기 쉽지 않다. 프랑크푸르트학파는 마르크스주의 자체도 스탈린주의4)로 귀결되어 해방적이기보다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필자는 앞서 언급했듯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 과거엔 오히려 마르크스를 완전히 부정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에 대해 배우니 그가 원했던 세상을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가 빨갱이가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알게 되었다. 세상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에 국한 받으면 안 되고 노동자들을 위한 곳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이 각박하다고 그 현실에 주저앉지 말고(지배계급 이데올로기에 귀속되지 말고) 현실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지배계급이 본인들의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이유도, 노동자들의 노동 때문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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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이 진행된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처음엔 시민대학에서 왜 굳이 마르크스에 대해 가르치는지 의문이 들었다. 수업을 직접 들어보니 일종의 마르크스에 대한 편견 깨기였다. 교수님께서 마르크스의 사상을 너무 학생들에게 강요하지 않으시면서도 그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셔서, 마르크스라는 한 사람을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세상에 완벽한 이론은 없으니 그로부터 받아들일 점은 받아들이고,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배척하는 사고를 가지길 바란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는 현재 필자가 재학 중인 건국대학교 새천년관 건물에서 진행되었다. 우리 학교가 대학연계 시민대학인 줄 몰랐는데, 서울시민들을 위해 좋은 활동을 하는 것 같아서 내심 애교심이 들었다. 다만, 수업 환경이 쾌적하진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교수님께서 사용하시는 화이트보드 크기가 작고 보드마카도 잘 나오지 않아 맨 뒷자리에서는 교수님의 필기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마이크도 없었는데 조만간 설치되어 뒷자리까지 교수님의 목소리가 잘 들렸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한 교수님이 계속 강의를 하실 경우 학생들에게 너무 편중된 시각만을 주입시킬 수 있어, 여러 교수님께서 이 주제와 관련하여 팀티칭 형식으로 수업을 하셔도 좋을 것이란 생각이다. 현재 대학연계 시민대학에서는 <마르크스의 자본론 읽기> 이외에도 <한국 고전 속 여인 열전 : 자기 삶을 개척한 주체적 여성 이야기>, <나만의 자서전 쓰기 : 한국의 근현대사와 나의 역사> 등의 강의도 진행 중이며 아직 수강신청을 받는 강의들도 있다.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의 강의를 들어보는 것도 좋겠지만, 본인이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한 강의를 들어보는 것도 추천한다. 한번 강의를 들어보면 그 분야에 새로이 관심을 갖게 될 수도 있고, 지식의 길도 넓힐 수 있으니 말이다.

1)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물질적재화를 창출해 내기 위해 사용되는 모든 능력을 가리킨다
2) 생산과정에서 인간과 인간이 맺게 되는 사회 관계
3) 마르크스에 의한 자본주의 비판을 계승하면서도 사회적 전체성을 철학적 개념에서만 파악하는 경직화된 해방 이론을 거부하는 집단
4) 스탈린치하의 소련 체제 및 지도 이념을 가리키는 말로서 숙청, 암흑 재판, 물리적 탄압 등을 연상시키는 부정적 의미를 띰.